건강칼럼_삶 그리고 죽음

▲  이정우
순천민들레하나한의원
원장

바람이 분다. 구름을 비집고 내민 하늘 구멍에서 바람이 내려온다. 마른 나뭇가지에 바람이 친다. 바람은 단풍잎을 헹가래 치듯 밀어 올린다. 단풍잎의 비상은 땅으로 내리기 위한 준비운동이다.

비가 내린다. 단풍잎 비가 내려온다. 바람을 쫓아 단풍잎은 땅을 쳤다 오른다. 이리저리 흩날리며 정처 없이 헤맨다. 아니다. 의도가 있다. 단풍잎은 달리는 차 뒤꽁무니를 피하거나 작은 참새의 날개를 비켜 흐른다. 단풍잎은 차도의 모퉁이나 건물의 구석으로 숨어든다.

자연은 여전하고, 하늘과 땅은 평화롭다. 평화로운 자연에는 쉬지 않고 요동치는 변화가 숨어있다. 바람이 불고 잎이 떨어지듯 스스로 그러하게 밤낮과 계절이 변한다. 변화가 없는 평화로움은 거짓이다.

변화와 안정의 꿈틀거림이 평화를 지탱한다. 일상의 평화에는 자유로운 변화가 양지를 차지하고 있는 반면, 구조적 폭력이 음지에 숨겨있다. 자유로운 변화를 제어하는 안정의 관성력은 구조적이며 은밀하다. 은밀하게 제어하는 힘이 우리를 둘러싸고 있다. 낙엽을 조종하는 만유인력이 눈에 보이지 않듯 은밀하게.

 

평화, 시위는 평화롭게 끝났다. 비폭력이 만연한 시위였다. 모르는 사람이 어깨를 부딪치고, 자유롭게 걸을 수 없었지만 평화로웠다. 민주노총의 연단에서 결연한 깃발이 나부꼈지만, 서울시청 앞 광장을 벗어난 순간 모두 평화롭게 행진했다. ‘타도하자’는 무거운 단어는 들리지 않았으며, 짱돌이나 화염병은 그림자도 내비치지 않았다. 경찰은 멀리 있어 줌렌즈를 통해서나 존재를 확인할 수 있었고, 고개 돌리면 보이던 정보과 형사들은 눈 씻고도 찾을 수 없었다.

비폭력 평화시위는 불법적 강압 속에서 조용히 이루어졌다. 경찰은 청와대 인근 율곡로와 사직로의 행진을 전면 통제하려 했다. 법원은 이런 통제는 집회의 자유를 제한하는 조치이고, 교통 불편은 감당할 수 있는 것이라며 청와대 앞까지 행진을 허락했다. 그러나 경찰은 경복궁역에서 행진을 차단했다. 시민들의 자연스러운 통행과 의사 표현의 자유는 폭력적으로 차단당했다.

평화시위가 벌어지고 있는 그 순간에도 구조적 폭력은 가을 하늘처럼 여전했다. 현대의 폭력은 대부분 구조적이다. 주먹이나 칼, 총 등을 사용하는 물리적 폭력은 눈에 보이지 않는 구조적 폭력에 비하면 새 발의 피다. 구조적 폭력은 가해자가 누구인지, 왜 당하는지도 모르게 자행된다. 나아가 자기가 당하고 있다는 자각마저 앗아갈 때가 많다. 우열반으로 나뉜 수업, 차별적 임금 체계와 농산물 저가 정책, ‘돈도 능력이다.’, ‘노력하지 않으니 가난하다.’는 폭력 논리 등등이 만연하다.

비폭력 평화시위가 구조적 폭력 안에서 관리되고 있다. 바람 따라 자유롭게 떨어지는 낙엽은 청소노동자의 관리 속에서 자유롭다.

순천민들레하나한의원 원장 이정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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