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칼럼_삶 그리고 죽음

▲ 이정우
순천민들레하나한의원
원장

어둑한 밤에 그분이 불쑥 내밀었을 때는 알지 못했다. 모양이 볼품없는 데다 여기저기 상처까지 나 있었다. 그리고 멀뚱하게 컸다. 지금까지 보아오던 것들보다 크면서도 한쪽이 뭉툭하게 튀어나왔다.

그래서 나에게 준지도 모른다. 처치 곤란한 물건은 자기 품에서 떠나보내기 쉽다. 설령 그럴 마음이 없었을지라도, 꼭 자기 품에 간직하고자 작정하지 않았다는 것은 틀림없다. 아니면 작은 의도가 있었을 수도 있다. 누가 준 물건은 물건 자체보다 그걸 준 사람을 생각하게 된다. 받은 물건을 볼 때마다 그분을 생각하게 되는데, 어쩌면 이를 염두에 둔 것일 수도 있겠다.

다시 못생긴 모과를 본다. 모과 종류 중에서 쭈글쭈글한 주름이 잡힌 것을 주름 추, 거죽 피를 써서 추피모과라 부른다. 향기가 나며 새콤달콤한 모과는 성질이 따뜻하고 독이 없어 차로 마시기도 한다. 한의에서는 추피모과를 상품으로 치고, 토사곽란과 근육 경련 등에 사용한다. 그러나 너무 많이 오래 마시면 치아와 뼈를 상한다.

▲ 모과 하나의 향기가 퍼져. 사진=이정우

추피모과(皺皮木科)를 생각하니 반추(反芻)하는 되새김 동물이 떠오른다. 반추에서 추(芻)는 꼴, 마소에게 먹이는 풀의 뜻을 갖는데, 여기에 가죽 피(皮)를 더하여 추(皺)자를 만들고 주름지다, 오그라들다는 뜻을 입혔다. 반추동물은 반추 위를 가지고 있으며, 한번 삼킨 먹이를 다시 게워 내어 씹는 특성이 있다. 이들은 소, 양, 사슴, 기린, 낙타 등이다. 소는 위장이 4방으로 나누어져 있고, 가장 큰 첫째 위는 용량이 200ℓ 정도이며, 음식물을 모아두었다 토해내서 40∼60회 정도 씹고 다시 삼킨다. 이렇게 진화한 이유가 있다. 육식동물의 사냥감이었던 반추동물은 항상 긴장 속에서 살았고 언제라도 달아날 준비를 해야 했다. 그래서 먹은 음식물을 안전한 장소에서 천천히 되새김질하여 소화하고 흡수력을 키웠다.

반추동물이 음식물을 되새김하듯, 인간은 말을 되새김해야 한다. 동물과 달리 인간은 고도의 추상적 언어를 사용하며, 인간은 언어에 의해 좌우되는 동물이다. 반추동물이 먹은 후 되새김하는 반면에, 인간은 말하기 전에 되새김해야 한다. 한번 해버린 말은 주워 담지 못하기에 내뱉기 전에 되새겨 봐야 한다. 그리고 했던 말도 곱씹고 되새김해야 한다. 더구나 공직에 있는 사람이라면 말해 무엇하랴!

첫인상이 마음의 호불호를 가르는 나침반이라면, 말은 인격을 담는 그릇이다. 말 몇 마디만 나누어 보아도 말이라는 그릇에 담긴 인격을 가늠할 수 있다. 주술관계가 맞지 않거나 적절한 어휘를 사용하지 않는 말씨는 담고자 하는 내용마저 왜곡시킬 수 있다. 대통령의 연설을 보고 그때 알아보았어야 했다. 그의 범상치 않은 끝 모를 품격을.

순천민들레하나한의원 원장 이정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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