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경식
순천소방서 소방관
얼마 전 한가위를 보냈다. 떨어져 살았던 가족들이 오랜만에 모여 즐거운 시간을 보냈을 텐데, 명절이면 더 바빠지는 사람들이 있다. 경찰이나 지자체 공무원, 대중교통 종사자, 환자의 응급처치를 돕는 병원이나 각종 사고발생에 대비하는 소방관 등이 그들이다.

필자와 같은 소방관들은 명절이나 연말연시가 되면 ‘특별비상경계근무’를 해야 한다. 다행히 근무를 피해 차례나 성묘를 지낼 수도 있지만 그러지 못한 경우가 많다. 소방관의 가족들은 이런 근무형태에 불만을 가지기도 하지만 다른 사람이 편안하게 명절을 보내게 하기 위해서는 누군가는 근무를 해야 한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00면 00리 주택 노인환자 구급출동’

명절이 다가오면 이런 출동이 많아진다. 평소엔 하루에 몇 건 되지 않던 노인환자 이송이 많아진다. 

시골에 사는 노인은 도시와 비교해 건강상의 문제가 많다. 거동이 불편하거나 지병을 앓는 경우가 많지만 병원이 멀다 보니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그런데 왜 명절에 노인환자 이송이 많아질까? 이유는 의외로 간단한데, 먼거리에 거주하던 자녀가 명절을 맞아 고향에 왔기 때문이다. 평소엔 자녀들이 먼거리에 있기 때문에 전화로만 안부를 확인해 오다가 명절을 맞아 직접 찾아뵙고는 부모님의 치료를 위해 병원을 찾게 되는 것이다. 자녀로서 당연한 도리라고 생각해 급증하는 노인환자 이송을 묵묵히 담당하고 있다.

‘00시 00병원 응급실 부족’

명절 전에 00병원 응급실이 부족하니 다른 병원으로 이송을 하라는 상황실의 메시지가 전파된다. 많을 때는 3-4개의 병원 응급실이 동시에 부족하다는 연락을 해오기도 한다. 보호자들이 원하는 병원으로 이송이 불가능하게 되면 응급실이 남아있는 병원으로 환자를 한꺼번에 이송하기 때문에 얼마의 시간이 지나지 않아 해당 병원의 응급실 부족이라는 메시지를 또 받게 된다.

거동이 불편한 환자나 자가용 차량이 없는 경우에는 119구급대가 이송하는 것이 좋겠지만, 거동에 불편함이 없거나 자가용 차량이 있는 경우에도 119상황실에 신고를 하는 경우가 있다. 119구급대로 병원 응급실로 이송을 요구하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은데, 환자는 119구급대가 이송하고, 가족은 자가용 차량으로 병원으로 이동한다.

명절 전후 노인환자 이송이 급증하면 119구급대의 출동 공백이 생기게 된다. 원거리에 있는 119구급대에서 환자를 병원으로 이송하는 경우에는 다른 곳에서 출동요청을 받을 때 이미 119구급대가 출동을 해 있기 때문에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그런데 대도시에 거주하던 사람들은 119구급대가 늦게 출동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도심의 경우 3-4분 거리에 여러개의 119구급대가 운용되기 때문에 출동 공백이 그렇게 크지 않기 때문이다. 부모님이 아파 있어 병원으로 이송을 원하는데 늦게 올 경우 짜증이 나기 쉽고, 그것은 곧 출동하는 119구급대원에 대한 폭언이나 짜증으로 나타난다.

직장생활 등으로 먼거리에 거주하는 자녀들은 시골에 남아있는 부모님에 대한 걱정이 같은 지역에 거주하는 자녀들보다 많을 것이다. 노인들이 스스로 병원에 가서 진료를 받지 못하기 때문에 자식들이 자주 찾아뵙고 도와드려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는 현실에서 짜증이 더 날수도 있을 것이다.

평소에는 부모님의 건강을 자주 챙겨보지 못했다가 직접 대면하여 부모님의 건강상태를 확인하고는 걱정이 컸으리라 생각한다. 그래서 직접 병원에 모시고 가서 치료를 받게 하고 싶었을 것이다. 명절이 지난 지금은 노인환자 이송이 평상시 수순이 되었다.

시골에 거주하는 노부모님과 먼거리에 거주하는 자녀들의 관계를 알고 있음에도 명절에 급증하는 노인환자를 보면 씁쓸함을 감출 수 없다. 나쁘게 말하면 일명 ‘명절효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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