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경식
순천소방서 소방관
지난 여름, 우리나라가 한 달 가까이 폭염에 휩싸였을 때 소방공무원들은 때 아닌 말벌과 싸워야 했다. 말벌과 관련한 출동이 전국적으로 하루에 수천 건에 달했고, 필자가 근무하는 곳에서도 말벌과 관련한 출동이 하루 40건이 넘었다.

나무 그늘에 있어도 땀이 흐를 정도의 폭염에 벌집 제거 출동이 떨어지면 곤혹스럽다. 말벌을 퇴치할 때 착용하는 보호복 때문이다. 비닐 제품으로 만들어진 보호복은 안면부를 제외하고는 모두 밀폐되어 있다. 말벌은 적외선과 자외선을 모두 감지하여 조금이라도 틈이 보이면 그곳을 집중적으로 공격하기 때문에 몸 전체를 감싸야 한다. 보호복을 착용하면 3분도 지나지 않아 탈수 증세를 보일 수도 있다.

지난해 경남에서 벌집을 제거하던 소방공무원이 말벌에 쏘여 순직을 했을 정도로 말벌의 독성은 강하다.

‘00면 00리 벌집제거 출동’이라는 지령이 떨어졌다.

소방차에 벌집 제거용 보호복과 장비를 갖춰 현장으로 출동했다. 현장 도착 후 보호복을 착용하고 벌집을 제거한데 소요된 시간은 약 20여 분. 그런데 무전기에서 우리 출동대에 다시 지령이 떨어졌다. ‘00면 00리 벌집 제거 출동’이다. 땀으로 범벅이 된 보호복을 상의만 벗은 채 다시 출동했다. 이번에는 감나무에 벌집이 있단다. 보호복을 입은 상태에서 사다리를 펼쳐 나무에 올라가서 벌집을 제거한다. 한 사람은 사다리를 지지하고 있어야 하기 때문에 벌집을 제거하는 사람은 혼자일 수밖에 없다. 조그만 실수를 해도 말벌의 집중공격을 당할 수 있다.

작업 중에 또 벌집 제거를 위한 지령이 또 떨어졌다. 다른 출동대가 출동할 수 없냐고 했더니 인근에 있는 출동대도 모두 벌집 제거를 위해 출동한 상태란다. 이렇게 하루에 4-5번을 출동하고 나면 온몸이 땀으로 범벅이 되고, 옷에서는 쉰냄새가 풀풀난다.

출동에서 복귀하면 샤워부터 하고 싶지만 땀으로 범벅이 된 보호복을 세척해야 한다. 여벌의 보호복이 없기 때문이다. 다 쓴 해충퇴치제(일명 에프킬라)와 부탄개스통을 새것으로 교체해 놓아야 다음에 있을 출동에 대비할 수 있다.

소방공무원이 벌집을 제거하는 것은 시민의 안전을 위해서이다. 그런데 간혹 다른 이유로 벌집 제거 출동을 요청하곤 해 소방공무원을 힘들게 한다.

첫째, 주변에 민가가 없는 밭에서 벌집 제거 요청이 접수되었다. 밭 주인은 벌집 위치만 안내만 해주고 다른 밭에 일하러 간다고 서둘러 떠너더니, 뒤늦게 나타나 “벌집이 약이 된다니 나에게 달라”고 한다. 벌집을 제거했기 때문에 없다고 해도 막무가내이다. 이럴 땐 방법이 없다.

둘째, 출동신고가 접수되어 출동해보니 오래도록 영업을 하지 않은 음식점이었다. 하지만 신고자는 나타나지도 않고, 휴대폰으로 전화해도 받지도 않았다. 힘들게 벌집을 제거하고 귀대할 때까지도 연락조차 닿지 않았다.

셋째, 밤 밭에 벌집이 있다는 신고가 접수되었다. 출동해보니 15m 이상의 높이에 있는 나무에 벌집이 있어 제거가 힘들었다. 높은 곳에 있는 벌집은 사람이 직접 다가가지 않는 한 사람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다.

넷째, 양봉을 하는데, 말벌이 꿀벌을 공격하니 말벌 집을 제거해 달라는 신고가 접수되었다. 출동이었다. 차량 통행이 어려운 깊은 산 속의 큰 나무 꼭대기 20m 높이에 벌집이 있었다.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경우 제거하기 어렵다고 하자, 민원을 넣겠다고 항의했다. 그 사람이 3-4번 정도 똑같은 출동 신고를 하는 바람에 직원들이 출동을 반복했다.

벌집 제거는 시민의 안전을 지키기 위한 것으로 가정집이나 사람의 통행이 빈번한 곳에 있는 벌집을 제거하는 것이지, 산중에 있거나 양봉을 돕기 위한 것이 아니다. 소방공무원이 벌집 제거에만 매달릴 수 없고, 교통사고나 화재 등과 같은 긴급한 재난에 대비해야 하는 만큼 벌집 제거 신고를 자제해 주면 좋겠다. 벌집 제거를 위한 출동으로 소방공무원과 장비에 공백이 생기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시민에게 부메랑이 되어 돌아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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