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계산은 남도의 명산으로 송광사와 선암사가 있는 불교문화의 중심이며, 순천사람의 주요한 삶의 터전이다. 
순천시 송광면 출신인 김배선 씨는 약 15년 동안 조계산과 그 주변 마을을 누비면서 주민의 이야기를 수집하고 현장을 답사한 자료를 토대로,  ‘조계산에서 만나는 이야기’라는 책을 냈다.
이 책 주요 내용 중 일부를 김배선 씨의 동의를 받아 순천광장신문 독자들과 함께 공유하기 위해 연재한다. 편집국




▲ 송광사 장정지 (長停址)

‘송광사 삼거리’의 원래 지명은 ‘장정지’이다.

주암호를 끼고 연결된 국도 18호선과 27호선 신흥마을과 평촌마을 중간 지점에서 송광사로 들어가는 삼거리이다.

장정지는 주암댐이 만들어지고, 수몰된 국도가 새로 나기 전까지는 삼거리가 아니었다. 주암댐이 만들어지고 난 뒤, 낙수마을을 고대, 대곡(한실), 곡천으로 이어지던 국도 15호선과 27호선이 주암호의 중심부에 포함되면서 수몰되었기 때문에, 새 길이 송광사 앞으로 지나가게 되면서 삼거리가 되었다.

오랜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장정지는 지금과 비슷한 삼거리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여러 정황과 기록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 장정지에서 신흥마을로 넘어가는 새 국도의 고개에는 본래 ‘거두재’(去偸峙)라고 부르는 고갯길이 있었다. 보조국사께서 정혜결사의 터로 자리 잡을 당시 도적떼(다른 파의 승려로 해석함)를 이곳을 넘어 주암으로 몰아냈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라는 기록이 『송광사지』의 전설편에 있다. 

국도가 새로 나기 전까지도 고갯길이 있었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사람들이 통행을 하였으니, 낙수진이 운영되던 1900년대 초까지는 많은 사람들이 통행하였을 것이다.

이후로도 1960년대까지도 오미실(진터)과 신흥에서 송광사 쪽으로 넘어오는 큰 고갯길(지름길)이 있었으므로 예부터 이곳은 삼거리였다.

▲ 송광사 장정지 (長停址)

주암댐에 새 길이 나기 전까지 이곳은 낙수삼거리에서 원굴재를 넘어 평촌마을 입구 물레방아가 있던 다리를 건너 송광사로 가는 십리벚꽃 길(1930. 3. 1 당시 송광면장 이창조 씨와 유력가들이 헌수한 벚나무 3000주를 낙수 삼거리에서부터 송광사까지 좌우로 심어 조성)이 이어졌다. 이 길의 중간지점에서 다리를 건너면 오른쪽에 개울을 등진 150여 평 정도의 타원형 정자나무 쉼터가 있다.      

당시 마을 사람들은 송광사 입구 삼거리를 ‘장정지’라고 불렀고, 다리도 ‘장정지 다리’라 불렀다. 지금도 평촌, 외송마을과 노인들은 장정지란 이름을 사용하고 있다. 

‘장정지(長停址)’란 한자에서 보듯 ‘長’이 머문 터, 곧 장승이 서 있던 자리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곳에 장승이 있었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은 육당 최남선의 『심춘 순례기』(1925-1926)에 기록이 있다.

“신평을 지나 한 모퉁이를 돌매 외금(外禁) 장승이 대령하였다가 절이 멀지 않음을 말없이 일러바친다” 여기서 신평이란 평촌마을이니 위치의 설명이 정확하다. 

또 평촌마을 출신 박의영 씨 등 노인들의 증언에 의하면, 장승이 사라진 해는 정확히 기억할 수 없으나 광복 직후까지 장승의 일부 잔해가 있었다고 한다. 『송광사고』에 의하면 고려시대 이곳은 ‘경대다리’라고 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어느 땐가 ‘경대다리’에서 ‘장정지 다리’로 이름이 바뀌었음을 알 수 있다.

이곳에 최초로 장승을 세운 기록은 없지만, 조선후기에 장승이 성행하였고, 선암사의 목장승도 1800년대에 세웠음을 미루어 볼 때, 이곳도 비슷한 시기에 세웠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민간신앙인 경계의 지킴이로 이곳에 서서 드나드는 사람과 안녕의 대화를 나누는 동안 ‘장정지’란 지명을 다시 만들었을 것이다.

시간의 흐름과 사회의 변천에 따라 새로운 길이 나 삼거리가 되고, 징검다리는 나무 흙다리로, 넓고 튼튼한 콘크리트 다리로 바뀌었다. 한적하고 시원했던 정자나무 쉼터는 사라지고 관광객을 기다리는 음식점(1990년 ‘평촌’ 전창수 씨가 공유지를 사들여 ‘느티나무가든’의 영업을 시작함)이 들어섰다. 지금은 국도 관리를 담당하는 순천사무소에서 세운 안내판 ‘송광사 삼거리’라는 이정표가 새로운 공식 지명으로 자리 잡고 있다. ‘느티나무가든’은 2007년 가을 수자원 보호 사업으로 철거되었고, 지금은 쉼터로 복원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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