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장에서는 다양한 형태의 정원을 폭넓게 관람할 수 있다. 그 중에 박람회장의 주공간인 세계 정원 구역의 한 가운데에는 커다란 호수와 여러 개의 언덕으로 꾸며진 커다란 정원이 있는데 이 정원이 바로 순천호수정원이다. 그 정원은 세계적인 정원 디자이너 ‘찰스 젱스’라는 분이 도심 순천의 풍경과 순천만에서 영감을 얻어 디자인한 순천의 축소판이라고 할 수 있다. 커다란 호수는 순천시가지를 뜻하며, 호수를 가로지르는 나무데크는 순천을 가로지르고 있는 동천을 상징한다. 그리고 호수 주변의 여러 개의 언덕들은 도심 순천을 둘러싼 여러 산들을 형상화한 것으로 그 중에는 난봉언덕, 인제언덕, 해룡언덕, 봉화언덕, 앵무언덕, 순천만언덕 등이 있으며, 그 언덕들 중  가장 높고, 가장 중앙에 위치한 언덕이 바로 봉화언덕이다. 

사실 순천은 굳이 ‘순천호수정원’이라는 작품으로 형상화하지 않아도 그대로 하나의 정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예로부터 순천을 “빼어난 경치의 호수와 바다 사이에 커다란 한 고을이 있으니, 예부터 아름다운 강남이라 했다네”(강남악부, 조선 정조 때 순천의 선비인 조현범 지음)라고 노래하거나 혹은 순천을 ‘삼산 이수의 고장’이라고 부르지 않았던가! 

▲ 이사천과 동천의 합류지점에 위치한 맑은물관리센타에서 바라본 순천시 전경. 김학수 기자 / 2006년 촬영
그런데 ‘삼산 이수의 고장’으로 불릴 정도로 빼어난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순천에서 정작 ‘삼산이수’가 어디인지 아직까지 명확하게 밝혀져 있지 않다. 이 중 ‘이수(二水)’에 대해서는 ‘동천과 옥천’이라는 설과 ‘동천과 이사천’이라는 설이 있으며 ‘삼산(三山)’에 더 많은 설들이 난무하고 있다. 그 여러 가지의 설 중 현재의 순천을 설명하기에 가장 적합한 주장은, 얼마 전에 작고하신 향토사학자 진인호 선생님이 강조하신 ‘삼산삼호신인(三山三護神人)설’이라고 할 수 있다. ‘삼산삼호신인(三山三護神人)’이라는 말은 ‘삼산에는 세 수호신인이 있다’라는 말이며, 거꾸로 해석하면 ‘세 수호신인이 있는 곳이 삼산이다’라는 뜻이다.

그 중 하나의 산은-지난 호에서 소개한 적이 있다.- 고려의 후삼국 통일에 결정적 기여를 하고 이 지역이 고려 조정으로부터 ‘순천’이라는 지명을 받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던 후삼국 당시 순천의 호족인 박영규 장군이 순천의 치소를 두었다고 하는, 현재 순천만정원박람회의 ‘한국정원’이 위치해 있으며, 박람회장의 배경이 되고 있는 해룡산이다. 이 해룡산의 수호신인은 당연히 박영규 장군이다.

박영규 장군의 후손 중에는 아주 ‘특출난 영웅’이 있는데 바로 박난봉 장군이다. 장군의 정확한 생몰 연대에 대해서는 기록이 전하지 않고 있지만 ‘강남악부’ 인제산 편에 “박영규의 후손인 박난봉은 특출난 영웅의 자태로서, 이 곳의 군장이 되어서 인제산에서 마을 뒤편 진산(鎭山, 곧 난봉산)에 이르기까지 성을 축조하고 그 곳에 웅거하였다. 죽어서는 인제산신이 되었다. 진산은 이로 인해 ‘박난봉’이라 칭하였으며, 옛 성터가 남아 있다. 대대로 진산 아래서 난봉을 제사지냈다”라고 기록되어 있어, 박난봉 장군이 예로부터 인제산신으로 불리었음을 명확히 해주고 있다. 그래서 순천의 삼산 중 또다른 하나는 인제산임이 분명하다.

삼산 중 남은 하나의 산은 성황산으로 이 산을 지키는 수호신인 상황신은, 박영규 장군과 동시대를 살았던, 순천의 또다른 호족 김총 장군이다. 김총 장군에 대해서도 역시 출생과 사망과 관련된 정확한 기록은 전하지 않고 있으며 다만 박영규 장군과 같은 시대를 살면서, 당시만 해도 순천에 속해 있던, 현재의 여수 지역을 장악하고 관할하던 호족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장군에 대해서  ‘신증동국여지승람’ 권40, 전라도 순천도호부 편에는 “견훤에게 벼슬하여 인가별감에 이르렀고 죽어서는 (순천)부의 성황신이 되었다”라는 기록하고 있고, ‘강남악부’에는 “후백제의 김총은 견훤을 섬겨 관직이 인가별감(引駕別監)에 이르렀고, 죽어서는 고을의 성황신이 되었다고 한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또한 조선 중기에 순천의 부사를 역임하신 지봉 이수광 선생이 순천 지역의 여러 가지를 정보를 소개한 ‘승평지’에도 “견훤에게 벼슬해 벼슬이 인가별감에 이르렀고 죽어서 부의 성황신이 되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로써 김총 장군이 순천을 지키는 호족으로써 ‘성황신’으로 불린 것은 명확하게 밝혀졌으나 김총 장군을 모신 성황산이 어디인지가 명확하지 않다.

이 성황산에 대해서는 두 가지 설이 있는데, 하나는 현재 순천의 봉화산이라는 설이고, 다른 하나는 현재 여천 공단이 있는 인근의 진례산이라는 설이다. 우선 현재의 순천 봉화산의 옛 이름이 성황당산이고 이 산에 김총 장군을 모신 사당이 있었다는 기록이 있으며, 반면에 성황신인 김총 장군을 모시는 성황사라는 사당이 진례산에 있었다는 기록이 또 전한다. 그러니 어느 쪽이 삼산 중 남은 하나인지 논란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현재까지 밝혀진 여러 가지 사료와 구전에 의하면, 어쩌면 ‘삼산이수’가 어디인지는 앞으로도 영원히 밝혀지지 않을 가능성이 많다. 그래서 오늘에 맞게, 우리에게 맞게 해석하여 받아들이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어차피 역사는 주관적으로 해석될 수밖에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온갖 설과 의견이 대립하는 가운데서도 분명한 것은 박영규 장군, 박난봉 장군, 김총 장군은 모두 우리 지역 출신으로 순천을 지켰으며, 순천을 지키는 신으로 추앙받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리고 그 장군들이 산신이 되어 우리 순천을 지키고 있는 여러 산들이 지금 순천만정원박람회장에 아주 아름답게 재현되어 박람회장을 찾는 여러 관람객들에게 기쁨을 주고, 힐링의 시간을 주고 있는 것이다. 자신들이 밟고 있는 그 언덕들이 가지고 있는 순천의 역사 이야기에 대해서도 관람객들이 알고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괜한 욕심을 부려본다.

엄주일
순천효천고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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