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로웠던 시골 마을 공동체엔 상흔
정부의 초고압 송전 정책엔 변화 계기

녹색당,  밀양 송전탑 투쟁 현장을 다녀오다

지난 주말, 녹색당의 전국 당원들이 밀양에 모이는 전국당원한마당에 참가하였다. 녹색당의 전국당원한마당 행사 장소가 밀양이었던 것은 신고리 원전에서 생산한 전기를 송전하기 위한 765kv 송전탑 건설이 2007년에 승인된 이후 주민들의 힘겨운 싸움이 밀양에서 지속되었기 때문이다.

당원 한마당의 둘째 날 오전, 당원들은 모두 송전탑 투쟁의 현장을 답사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날 행사에는 송전탑 보상금을 거부하고, 마을에서 송선탑 건설 저지를 위해 오랜 기간 힘겹게 싸워 온 밀양의 어르신들도 함께 하셨다. 그들은 모두 우리 시골 마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70대, 80대의 노인들이었다.

2012년 이 마을의 이치우 어르신(당시 74세)이 평생 일궈오던 논 위에 거대한 송전탑이 세워지는 것을 막기 위해 싸우시다가 분신 자결하는 일이 발생했다. 한국전력에서 고용한 용역과 자신의 논에서 거칠게 몸싸움을 하며 저항을 이어가던 중에 일어난 일이다. 우리는 이치우 어르신이 분신 자결을 한 자리에서 추도사를 읽는 것으로 밀양송전탑 답사를 시작하려 했다.

▲ 답사 참여자들이 이치우 어르신 농지에 세워진 송전탑을 향해 답사를 시작하고 있다.

그런데 차를 타고 지나가던 마을 주민 한 사람이 차를 세우고, 차창 밖으로 남의 동네에 와서 왜 이런 짓을 반복하냐며 항의를 했다.(그는 송전탑 건설 보상금을 받고 합의를 해준 주민이다.) 처음엔 행사를 진행 중이니 그냥 지나가 주시라고 요청을 했으나, 그 분의 목소리는 점점 거칠어졌고 우리와 함께 계시던 밀양의 어르신들과 언쟁이 시작되었다. 송전탑 건설을 용인한 주민은 그런 불미스러운 일을 왜 자꾸 부각시키려 하냐며 항의하였고, 송전탑 건설을 끝까지 반대한 주민들은 사람이 송전탑 건설을 반대하다가 죽었는데 그게 할 말이냐며 대응하는 상황이었다.

결국 행사 운영진이 양측을 적당히 말리고, 지나가던 주민이 가던 길을 계속 가게 하여 짧은 언쟁은 끝이 났다. 이 잠깐의 언쟁사이, 그간 수많은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낸 할매와 할배의 눈에는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국가발전이라는 이름 아래에 진행된 이 거창해 보이는 사업은 이렇게 평화로웠던 시골마을의 공동체를 산산조각 내버리고 자신들의 목적만 달성한 채 사라졌다. 송전탑 건설을 반대하는 주민은 각 마을마다 상대적으로 소수이기에 다수인 찬성 쪽 주민들로부터의 핍박에 맞서서도 싸워야만 했고, 이는 앞으로도 계속 될 것이다.

그동안 계속 이런 폭력적인 방식으로 핵발전소가 세워졌고, 발전소의 전기를 대도시로 나르기 위해 송전탑이 세워졌다. 그렇게 해서 이치우 어르신의 논 한가운데에는 두터운 시멘트 기초 위에 일반 송전탑보다 훨씬 거대한 송전탑이 서 있다. 그리고 이 철탑을 위해 그 논에서 평생 농사를 지었던 농부는 이 세상에 없다.
답사길을 걸으면서 주변의 산과 길을 따라 흐르는 물길, 농지가 어우러지는 풍경이 정말 아름다웠다. 765kv 송전탑은 이 풍경을 가로질러 거인과 같이 우뚝 서 있다. 답사에 함께 했던 당원들과 밀양의 어르신들은 그간의 투쟁 과정을 이야기하면서 눈물을 글썽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송전탑을 다시 뽑아낼 그날까지 끝까지 싸우자는 의지를 다지면서 함성을 외치고, 손을 잡고 함께 크게 웃었다.

수많은 패배 속에서도 지난 5월 산업통상자원부가 ‘신울진~신경기 신규 765kV 노선’을 포기하고, 500kV HVDC(초고압 직류 송전)로 전환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하게 하는 승리의 경험도 만들 수 있었다.

주민의 평화로운 일상을 짓밟으면서 이루어지는, 주민을 위해 진행한다는 사업. 이러한 국가 폭력에 더 이상 누군가가 희생되고 일상의 평화를 빼앗기는 일은 없어야 하겠다. 그러기에 현 정부의 핵발전소 건설정책에 저항해야 하는 이유가 분명해졌다. 이날 밀양의 어르신들을 우리에게 당당하게 말했다. “우리는 지지 않을 것입니다!” 

▲ 밀양 송전탑 답사에 참여한 녹색당원들이 765kV 송전탑 앞에서 신고리5,6호기 승인 반대의 의지를 다지고 있다.

(더 자세한 내용은 책 ‘탈핵 탈송전탑 원정대(밀양 할매 할배들이 발로 쓴 대한민국 ‘나쁜 전기’ 보고서)-한티재‘를 참조하면 된다)
 

녹색당 순천당원 이현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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