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칼럼_삶 그리고 죽음

▲ 이정우
민들레하나한의원
원장
인성이 문제란다. 마음을 비우고 평화로운 사람이 되라 한다. 가진 게 이리 많은 데 무얼 또 가지려고 하느냐 꾸짖는다. 옛날보다 지금 이렇게 잘 사는 데, 현재에 집착하지 말고 과거를 돌아보라고 점잖게 훈계한다.

고대 알렉산더 대왕이 철창에 갇힌 철학자 디오게네스에게 행복의 비결을 물었다. 디오게네스는 “지금 햇빛을 즐기는 중이니 가리지 말고 좀 비켜주십시오.”라고 말했다. 알렉산더 왕은 “아무런 걱정도 없이 한 줄기 햇빛으로 저렇게 행복할 수 있다니, 참으로 부럽구나!”라며 자리를 떴다.

이 얘기를 하며 알렉산더보다 디오게네스가 행복하다고, 디오게네스를 닮으라고 한다. 그리스에서 페르시아, 인도에 이르는 대제국을 건설한 알렉산더는 제국 중 어느 나라가 자신을 배신하고 반항할지 항상 불안에 떨었다. 반면에 모든 것을 다 버리고 나무통에서 산 디오게네스는 항상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고 한다. 가진 것이 많으면 많을수록 가진 것을 잃어버릴까 봐 근심과 걱정이 많아지므로, 더 많이 가지려 한다면 불행해질 것이라 한다. 법정 스님처럼 무소유로 살다 가라 한다. 좋은 말이다.

 사진출처: www.wallpaper-box.com

맞는 말이다. 욕심을 버려야 한다. 남과 견주어 올라서려는 마음은 불행의 씨앗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마음을 비우는 것은 자기 성찰의 관건이었다. 극한에서도 마음을 비우는 사람을 성인이라 부른다. 독배를 마셔야 소크라테스가 될 수 있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어야 예수가 될 수 있다. 하다못해 철창에 갇혀서도 조용히 비켜달라고 해야 철학자 디오게네스라도 될 수 있다.

하지만 ‘마음을 비우라’는 말은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통용되는 철칙이 아니다. 다 키운 자식의 죽음을 눈 뜨고 보며 아무것도 못한 부모에게 ‘마음을 비우라’는 말은 두 번 죽이는 매서운 고문이다. 군부독재 시절, 아무 영문도 모른 채 중앙정보부에 끌려가는 사람에게 ‘마음을 비우라’는 말은 가혹한 군홧발이다. 눈앞에 지구의 종말이 펼쳐져 잠시도 여유를 부릴 수 없는 활동가에게 ‘마음을 비우라’는 말은 포기를 강요하는 사탕발림이다. 어렵게 마련한 전세금으로 차린 구멍가게를 눈물 훔치며 비워줘야 하는 세입자에게 ‘마음을 비우라’는 말은 날카로운 비수다. 하루하루 죽음을 옆에 두고 남몰래 사발면을 먹어야 하는 하청노동자에게 ‘마음을 비우라’는 말은 굴복을 강요하는 쇠사슬이다.

비우기 전에 먼저 마음을 돌아볼 수 있게 ‘자리’를 깔아주어야 한다. 비울 마음이나마 한번 느껴볼 수 있는 ‘짬’이라도 주어야 한다. 사람이면 누구나 자기 마음에 눈을 돌릴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제공받을 가치가 있다. 그렇게 한 후에 조용한 목소리로 그 뻔한 말을 하라.

순천민들레하나한의원 원장 이정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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