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에는 숨겨진 이야기가 있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나와 너, 그리고 세상의 이야기를 함께 나누는 것이다. 책은 혼자 읽는 것이지만, 책 읽기의 끝은 개인의 성찰을 넘어 사회의 변화에 이르게 된다. 우물 속 개구리가 개별적인 수양을 통해 깨달음을 얻었다 하더라도, 우물 밖으로 나오지 못한다면 깨달음의 의미는 널리 퍼지지 못한다. 독서를 통해 깨달음을 얻거나 지식을 쌓는다 하더라도, 깨달음 이후의 ‘삶’이 이전보다 아름답지 않다면 우물 속 ‘큰’ 개구리와 얼마나 다르겠는가? 한마디로 우리에게는 책을 읽는 행위 자체가 목적이 될 수는 없다. 결국, 책을 읽는 행위는 나와 너, 세상을 살기 좋게 가꾸자는 모두 다 알지만 내밀한 뜻이 숨어있다.

“책이란 무릇 우리 안에 있는 꽁꽁 얼어버린 바다를 깨뜨리는 도끼가 아니면 안 되는 거야.”라고 카프카는 말했다. 더불어 책은 우리 앞에 가로놓인 커다란 성곽을 부수는 도끼여야 한다. 책이란 모름지기 도발이어야 하고, 평온을 넘어선 불온함이어야 한다. 실로 그렇다면 책읽기를 어찌 혼자서 감당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책 읽는 이유야 여러 가지이나, 종착지는 ‘함께 사는 행복한 삶’이다. ‘함께함’은 독서의 목적과 방법 모두에 부합한다. 이는 그 첫 시작인 유아기의 책 읽기가 엄마와 함께였던 것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데, 모름지기 책이란 사람을 묶어주는 매개로서 ‘함께함’의 기본적 수단이다.

순천은 수년 전부터 ‘책 읽는 도시, 순천’을 내걸고 여러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그런 행사들이 순천에 사는 사람들을 함께 하도록 묶어주는 좋은 매개체가 되었을까? 사람과 사람을 묶고 마음을 통하게 하는 ‘함께함’의 수단이 되었을까? 선뜻 그렇다고 답하기에는 부족함이 많다.

순천은 전국 최초로 기적의 도서관이 만들어졌고, 작은 도서관과 공공도서관이 매우 많다. 도서관의 가치는 물리적 공간의 크기가 아니라 그곳에서 하는 일로 평가받는다. 예전처럼 장서나 열람 좌석의 규모로 도서관의 등급이 매겨지는 시대는 지나갔다. 순천의 많은 도서관은 어떤 평가를 받을까? 매년 되풀이되는 수많은 강의와 강연은 일회용 휴지처럼 쓰고 버리는 소모성 행사가 아닌지 되돌아볼 때다. 독서모임에서 사전에 토론하고 사후 진행되는 평가와 함께 참여한 시민의 조직화가 없는 강연은 예산을 낭비하는 일회성 행사가 아닐까?

책은 사람을 묶는 매개체
사서는 공동체 개척자가 되어야
시장의 철학과 노력이 결정적

한 예로 군포시에서는 3개월 동안 10회 내외의 강의를 하고 참여 시민을 동아리로 묶어 지속적으로 도서관과 연계를 갖는 프로그램이 있다. 또 독서토론방을 제공하고 토론 자료를 제공하며 강사를 섭외하고 지원하는 프로그램도 한다. 이처럼 군포시의 사서는 네트워크 디렉터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도서관은 책을 매개로 아이와 노인이 결합하고, 초등생과 중고생, 학생과 중장년이 서로 만나도록 다양한 끈을 만들어야 한다. 이는 행사를 우선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우선에 두는 깊은 고민의 발로일 것이다.

김해시에서 진행되는 [청소년 인문학 읽기 모임 토론회]는 상호 경쟁하여 순위를 매기는 방식이 아니다. 이는 비경쟁식 토론 대회로서 도서관에서 일상적으로 청소년 책 모임들의 활동을 지원하고, 각 팀들의 경험과 생각을 나누었던 결과물이다. 이는 김해시장이 시의원, 교육청, 시민단체, 대학 등과 결합하여 협의체를 구성하고, 지역 사회로부터 다양한 협조를 이끌어낸 수년간의 노력 속에서 이룩된 것이기에 더욱 의미가 있다. 즉, 김해시에서는 사서가 공동체 문화의 개척자로 대우받고 있다. 이는 책을 통해 지역을 사람 중심의 공동체로 변화하려는 철학이 있는 시정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순천이 책 읽는 도시가 된다는 것은 시민들의 손에 책이 한 권씩 들려져 있는 것이 아니다. 작가의 내밀한 이야기를 우리가 읽듯이, 책을 통해 우리의 이야기를 읽고 공감하는 공동체, 순천을 만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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