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요가 수행자의 결혼과 이혼

삶의 목적은 무엇일까요? 우리의 주인공 김민우와 함께 인도 요가 스승들의 답을 들어 볼까요?

 

 

 

▲ 장용창

심심한 천국의 낯선 행복에서 아직도 김민우를 불안하게 하는 것이 있었으니, 그건 그 자신의 계획이었다. 방문객이 떠나겠다고 하지 않는 이상 영원히 머무를 수 있는 천국인 이 아쉬람을 한달 반만에 떠난 이유도 이 낯선 행복 때문이었다. 그는 계획대로 살지 못하면 불안한 사람이었다. 인도 여행은 일년 동안 하기로 계획했고, 일년 내에 삶의 의미를 찾기로 계획했으니, 그 목표를 달성하거나 목표를 향해 가는 중이라고 믿을 때에만 마음이 편안한, 그는 전형적인 한국식 일 중독자였다. 그러니, 남들이 그렇게도 부러워하는 천국,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이 천국에서조차 그는 ‘이렇게 살면 안돼’라는 생각에 행복할 수 없었다.

 

 

삶의 의미에 대해, 인간과 신에 대해 물으려고 아쉬람을 찾아온 김민우를 당황스럽게 한 것은, 아쉬람의 사람들이 신에 대해 별로 이야기를 나누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가 아쉬람에 온 이후 신에 대해 들은 이야기는 맨손으로 밥 먹는 전통이 신에게서 왔다는 농담밖에 없었다. 더욱이 그가 만나고 싶었던, 성인이라고 불리는 사티아난다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김민우는 그가 매일 만나서 농담 따먹기를 하던 외국인 방문객들에게 틈만 나면 삶의 의미와 신에 대해 물어봤다. 간디가 살균 효과를 위해 매일 먹었다는, 마당에 떨어진 님나무 잎이나 쓸고, 감자나 깎으면서 하루를 보내는 그들이, 알고 보니 죄다 프랑스, 브라질, 이탈리아, 독일 등 여러 나라에서 겁나게 잘 나가는 요가 지도자들이었다. 개중에는 프랑스의 초등학교에서 요가를 정규 과목으로 배우도록 만든 사람도 있었다. ‘뜻도 모르는 고대 언어인 산스크리트어로 된 바가바드기타 15장을 왜 매일 점심 때마다 부르는 거죠?’ ‘왜 이곳의 스와미들은 아무도 강론을 하지 않나요?’ ‘요가를 배우러 오신 것 같은데, 왜 아무도 아사나 체조도 안 하고, 명상도 안 하고, 요가 이론을 배우지도 않는 거죠?’

김민우는 아쉬람에 온지 한달쯤 되었을 때 중요한 축제일이 되어 인근 마을 사람들과 아쉬람의 사람들이 모두 모였을 때에야 드디어 처음으로 강론을 들을 수 있었다. 오백 명쯤 되는 사람들 앞에서 먼저 강론을 한 것은 그 아쉬람의 실질적인 대표자인 사티아상가난다였다. ‘만트라(기도) 수행을 하십시오. 만트라야말로 모든 소원을 들어주며, 깨달음으로 가는 가장 빠른 길입니다. 만트라의 소리는 우리 몸의 에너지인 나디와 그 중심인 차크라를 자극하여 깨웁니다. 만트라의 뜻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소리의 파동이 에너지를 깨웁니다.’ 그녀는 마치 김민우의 마음 속 질문에 답하는 듯했다. 그제서야 김민우는 왜 뜻도 모르는 노래만 주구장창 부르는지 알게 된 것이다.

김민우가 사티아상가난다의 강론을 듣고도 몰랐던 것은, 그녀가 탄트리즘의 대가(大家)라는 사실이었다. 탄트리즘은 약 2천년전 요가와는 다른 신비주의 수련 전통에서 출발한 이후 점차 요가와 통합된 수련 방법이었다. 성(性) 에너지를 보호하여 깨달음을 얻는 것, 우리 몸 안의 에너지 흐름인 나디와 그 중심인 차크라의 개념, 차크라가 폭발할 때 나타나는 쿤달리니 현상 등도 모두 탄트리즘에서 시작되어 요가로 통합된 개념들이었다. 목소리가 몸의 에너지를 깨운다는 만트라 수련도 탄트리즘에서 나온 것이다. 현재를 너무나 중요시한 나머지 욕망에 충실하기까지 한 탄트리즘에 비하면 요가는 차라리 합리적이고 체계적이고 금욕적이다. 사티아상가난다는 어릴 때부터 스승들로부터 비밀스럽게 탄트리즘 수련을 받아 젊은 나이에 마스터가 되었고, 사티아난다의 제자가 되었다. 사티아상가난다의 강론 이후 오백 명이 함께 부르는 찬가를 들으며, 드디어 그녀의 스승인 사티아난다가 연단에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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