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경식
순천소방서 소방관
오래전 일이다. 119구급대에서 일할 때인데, 위급환자는 아니었지만 가족의 입장에서는 놀랐을 환자였다. 취명(싸이렌)을 울리며 진행하던 119구급차가 잠시 서행하자 동승한 가족이 “왜 갑자기 천천히 가느냐?”고 물어 “과속단속 카메라 지점이다”고 답했다. 가족은 다시 “아니 119구급차도 해당하느냐?”고 물어 “사후에 응급환자를 이송 중이었다는 서류를 제출하면 면제가 되지만 같은 장소에서 계속 단속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답했다. 동승한 보호자는 자신의 가족이 위급한 상황인데, 과속카메라를 의식하며 주행하는 우리에게 서운하다는 눈치를 보였다.

도심의 119안전센터에서 출동할 때 항상 문제가 되었던 곳이 있었다. 119안전센터 옆이 신호등 없는 사거리여서 야간에는 정체가 되는 곳이었다. 출동할 때 식은땀이 흐를 정도로 곡예운전을 하고 지나가야 했던 곳이다. 차고에서부터 귀청이 떨어져 나갈 정도의 취명과 차량에 설치된 모든 경광등을 켜고, 방송시스템으로 화재출동임을 알려야 간신히 지나갈 수 있을 정도였다.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는 우리보다 다른 119안전센터가 먼저 화재현장에 도착하는 일이 다반사였다.

지난 3월 18일 강원도 강릉에서 119구급차량과 택시, 승용차 등 차량 3대가 사거리에서 충돌했다. 응급환자가 발생하여 출동하는 도중에 발생한 사고였는데, 다행히 모두 큰 부상을 입지 않았다. 그런데, 지난 4월 3일 긴급출동 중에 신호위반으로 교통사고를 낸 구급대원은 교통사고처리특례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입건되어 조사를 받았다. 도로교통법(제2조)에 소방차나 구급차 등은 위급한 때 신호위반을 하여 중앙선을 침범하여도 법에 저촉되지는 않지만, 교통사고가 발생할 경우에는 운전자가 그 책임을 지도록 규정하고 있다.

교통신호등이 녹색인 경우 진행하고, 적색인 경우 정지하는 것을 모르는 시민은 없을 것이다. 모두 교통신호에 따라 자동차를 운전하거나 횡단보도를 지나간다. 모두 교통신호를 지키고 있는데 화재진압을 위해 출동하는 소방차는 교통신호를 무시하고 진행해야 하는가? 교통신호를 지키고 진행을 하여야 하는가? 고민이 될 수 있는 문제이다.

위급한 환자가 있는 가족은 구급차가 빨리 출동해 응급처치하고, 병원에 가서 제대로 된 진료를 받기를 원할 것이다. 화재가 난 곳에서는 조금이라도 빨리 도착해 더 큰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화재진압을 해주기를 원하지 않겠는가?

만약 응급환자를 이송하는 구급대원이 교통사고 예방을 위해서 교통신호를 지켜가며 환자를 이송하던 중 환자가 사망하였다면 어떻게 될까? 법에 따른다면 구급대원은 잘못한 것이 없다. 안전을 확보한 상태에서 병원으로 이송을 하던 중 사망한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구급대원에게는 응급환자가 이송 중에 사망했다는 트라우마가 남게 될 것이다. 교차로에서 나보다 더 빨리 지나가야 하는 차가 있는지 한번쯤 살펴보면서 양보를 하면 좋겠다.

비보호좌회전 교차로에서는 좌회전을 할 때 교통신호 위반으로 처벌받지 않는다. 하지만 교통사고가 발생할 경우 교통신호 위반이나 중앙선 침범에 따른 처벌을 받는 ‘보호받지 못하는 좌회전’이다. 소방공무원의 출동 중 사고는 비보호 좌회전처럼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한다. 빨리 출동해야 하지만 앞선 차들이 비켜주지 않고, 교통신호는 적색등으로 다른 차선에서 계속 주행하고 있으면 응급차량이라도 별다른 방법이 없다. 나와 내 가족의 생명과 재산이 소중한 만큼 우리 이웃의 생명과 재산도 소중하다는 것을 알고 응급차에게는 양보해 주는 마음이 필요하다.
 

저작권자 © 순천광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