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종택 논설위원
우리나라 학교에서 ‘부끄러움’을 가르치는 과목이 있으면 좋겠다.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자존감과 긍지 혹은 품위를 가지려면, 무엇이 인간다움을 훼손하는가, 무엇이 부끄러운 일인가에 대해서 아는 것이 필요하다. 특히 우리나라는 오랜 기간 권력과 힘을 가진 사회의 상층부와 언론이 썩고 문드러지다 보니 온갖 망동과 갑질이 만연하는 사회가 되어 버렸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도 맑은 법인데, 윗물이 썩어버리니 아랫물인 사회 곳곳이 성한 곳이 없을 정도로 기강도 없고 품위도 없는 판이 되었다. 그래서 우선 부끄러운 일 몇 가지를 생각해 보았다.

1. 필요 이상의 부를 가지고 누리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성서에서 예수가 한 말 중 가장 감동적이고 도전적인 것은 두 가지다. 하나는
“원수를 사랑하라”이고 또 하나는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 들어가기보다 어렵다” 는 말이다. 과연 인류의 최고 스승다운 말이다. 이천년 이상 인류가 이런 수준으로라도 살아온 데는 위의 두 말의 영향력 때문일지도 모른다.

사람은 몸을 가지고 있고 3차원 세상에 살고 있으므로 의식주가 필수다. 그리고 가정생활 사회생활을 하기 위해 건강, 자녀교육, 노후보장 등도 필요하다. 그런데 자본주의 최대의 악은 끝없이 욕망을 확대시킨다는 것이다. 인간이 사는데 필요한 일정한 재산은 필요하지만, 그런 수준을 이룬 사람도 만족하지 않고 끝없이 부를 증대하라고 부추기는 것이 병든 자본주의의 구조적인 악이다. 이것은 일종의 마약이고, 최면이다. 많은 사람이 이 마약에 중독되어 살다보니, 살만한 형편인데도, 더 많이 벌려고 애쓴다. 더 많이 벌고 쌓아서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가? 짊어지고 저승까지 가려는가? 따라서 일정한 정도 이상의 부를 추구하는 일은 심히 부끄러운 일이다.

2. 힘과 지위가 있으면서 오만한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모든 사람은 똑 같이 존엄하고 고귀하다. 어떤 사람이 타인보다 본질적인 면에서 더 가치 있고 고귀한 것은 아니다. 다만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므로 어떤 단체나 조직을 구성할 필요가 있고, 따라서 일정한 위계질서가 생기는 것은 인정되고 높은 직위나 직책을 가진 사람이 있는 것 또한 불가피하다. 그러나 남보다 높은 지위와 힘을 가진 것이 남위에 군림하고 오만하라는 것은 아니다. 높은 직책이란 더 크게 책임지고 봉사하라는 뜻이다. 남으로부터 더 많이 대접받고 남위에 군림하는 태도는 부끄러운 일이다.

3. 자신과 가족에만 매몰되어 사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인간은 개체이고 가족의 일원이므로 일차적으로 자신과 가족의 생존과 생활을 돌보고 사는 것이 본능이자 의무다. 이런 본능과 의무를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사람은 사회적, 정치적 존재다. 다시 말하면, 개인과 가정의 생존과 생활은 바로 사회적, 정치적으로 규정되고 영향을 받는다. 나와 내 가족의 안녕과 행복을 위해서는 올바르고 정의로운 사회와 정치가 되어야 한다. 그런데 자신과 가족의 행복을 추구하면서 사회와 정치를 외면하는 경우가 많다. 사실 우리 사회와 역사의 발전은 그동안 끊임없이 더 좋은 세상을 만들겠다고 애쓰는 시민단체나 개혁적 운동단체의 노력과 헌신 덕이 크다. 많은 사람이 부패한 권력이나 자본과 싸우는 과정에서 죽고, 감옥가고, 가정파탄 나고, 경제적 피해입고, 청춘이 시들었다. 물론 지금도 우리 주변에는 그런 단체와 사람이 곳곳에 있다. 그들의 노력 때문에 이만큼의 대한민국이 된 것이다. 그런데 다수의 시민은 이런 사실을 외면하고 눈감고 무임승차를 즐기고 있다. 안타깝고 부끄러운 일이 아닌가?

4. 타인의 고통에 둔감한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인간다움의 기본에는 공감능력이 있다. 이것은 나 아닌 타자의 입장과 처지를 이해하고 함께 느낄 수 있는 능력이다. 그 타자가 사람일 수도 있고, 동물, 식물, 삼라만상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사람이라면 최소한 다른 사람에 대한 공감능력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모든 소질과 능력이 그렇지만 이것도 이를 키워주고 북돋아 주는 사회와 환경이 있고, 억압내지 축소시키는 환경이 있다. 근자에 우리나라는 이 공감능력을 말살하거나 감소시키는 분위기가 확대되었다. 따라서 타인의 어려움과 고통에 대해 함께 아파하고 슬퍼하는 것이 어려워져 버렸다. 그러나 눈이나 팔이 하나 없는 것이 정상이 아니듯이, 타인의 고통과 처지를 이해하고 함께 느낄 수 없는 사람은 정상이 아니다. 무언가 이상해도 크게 이상한 사람이다. 사람으로서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다.

5. 자기 입장만 옳다고 고집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생각하고 느끼는 능력을 가진 사람은 누구나 어떤 대상과 현상에 대해 나름대로의 견해와 판단을 하고 산다. 동일한 대상에 대해서 열 사람은 열 가지 다른 견해를 가질 수 있다. 사람은 개체이므로 개별적인 몸이 있듯이, 개인적인 신념과 판단을 가지고 사는 것은  당연하고 바람직한 일이다. 그런데 개중에는 자신의 신념, 가치관, 판단과 견해가 남의 그것보다 우월하다는 망상을 가진 사람이 있다. 특히 지위와 힘을 가진 사람, 전문가들 중에 이런 경우가 많다. 그런 사람이 자신의 견해와 판단을 과신하고, 이것을 아래 있는 사람들에게 직접 간접으로 강요할 때 문제는 매우 심각하다. 자신의 신념과 견해는 자신에게 중요하듯이, 타인의 것들 역시 그 사람에게는 중요하고 존중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자신의 것은 옳고 타인의 것은 그르다 여기는 것과 지위가 높다고 자신의 것을 강요하려는 태도는 부끄러운 일이다.

맹자는 인생삼락을 말했는데 그중 하나가 “우러러 하늘을 보고 굽어 인간세상을 보아도 부끄러움이 없는 것” 이라고 했다. 요즘 사람들이 성공, 출세, 부자 등에 과도한 관심을 기울이다 보니, 최소한 인간으로서 갖추어야 할 염치와 품위를 잃어버리고 부화뇌동하고 있다. 한 번 태어나면 한 번 가는 것이 인생인데 스스로 중심을 잡고 경계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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