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남매의 장녀로 태어난 한 여인이 있었다. 가난 때문에 제대로 교육을 받지 못한 여인은 어린나이에 노동자가 되었다. 독실한 카톨릭 신자였던 여인은 수녀가 되고 싶었지만 부모의 뜻에 따라 원하지 않는 결혼을 하였다. 지독한 가난과 무책임한 남편으로 인해 홀로 가장이 되어야 했다. 그 여인은 여느 사람보다 생각이 깊었다. 상처만 주었던 가족을 걱정했고 이웃과 나라를 걱정했다. 1991년 4월부터 5월까지 약 한 달 동안 11명의 학생과 시민이 죽음으로 정권에 항쟁하였다. 그 가운데에 그 여인도 있었다. 죽어간 젊은이들의 길잡이가 되겠다며 수많은 상처를 용서로 보듬고 떠나갔다.

그 여인은 나의 언니 이정순 이었다.


내 모든 것 다 넣어 주리

강물이 흐르듯 가는구나
양떼 줄지어가듯 가는구나
하이얀 꽃들이 오롯이 가는구나
어디 앞에 가는지 그대는 아는가
주님 앞에 가나니 문을 열으소서
마음의 문을 활짝 열으소서
내 모든 것 다 넣어 주리라
아픈 곳 다 쓰다듬어 주리라
우는 자들아 애타는 자들아
나도 애간장 다 타는구나

 -  이정순 열사의 시 -

▲ 고향이 순천인 이정순 열사는 망월묘역에 잠들어 있다.



언니에게

            - 이옥자 -

쌓인 정을 한아름 안고
가시나요 가시나요 정녕 가시나요
사랑만 남기고 말없이
야속하게 떠나가시나요
밤마다 홀로 기나긴 이별을 준비하며
눈물 속의 진주를
몇 십 말을 꿰어 놓았나요?
밤마다 사랑의 편지를
눈물로 쓰다 얼마나 지웠나요?
언니 보이지 않는 사랑의 탑들을
얼마나 높이 높이 쌓았나요
아! 언니 당신의 뜻 조금만
일찍 알았으면 웃음으로 보낼 것을
정녕 가시나요 가시나요
언니가 원하시던
사랑과 평화 이룩하시려
아낌없이 가시나요
가실 때는 말없이 가셨지만
통일의 그 날에는
오색 무지개 꽃구름 타고 오시어요.

-언니 이정순에게 바치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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