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이 아름답네요’

이는 나츠메 소세키가 I love you 를 '너를 사랑해' 라고 직역한 학생의 번역물을 고쳐주며 대안으로 제시한 말이다.

그 시대는 19세기 말엽이었으니 당시 한중일 세 나라의 성에 대한 개방도, 여성인권 수준 등을 생각하면 참 적절하게 문제를 피해감과 동시에 현대인인 내 관점에서 보면 문학적인 효과마저 동시에 취하는 재미있는 번역이다.

고등학생 시절 나는 ‘달이 아름답네요’의 사례를 보고 다른 나라 말을 우리말로 예쁘게 옮기는 사람이 되고 싶어 대학교와 전공을 선택했다.

통역에 아직 접근도 해보지 못한 2014년의 여름날에 나는 입대했다. 통역병의 생활이란 쉬운 것이 없었다. 나는 군생활의 고달픔을 어디론가 표출하고 싶었고, 이듬해 벚꽃이 피기 전까지 친구에게 일방적으로 내 고통을 알아줄 것을 요구했으며 당연한 결과로 친구를 잃었다.

 근무가 들어있는 날엔 8시간가량을 꼬박 차 안에서 파트너와 패트롤을 헤쳐 나가야한다. 아무도 나와 파트너의 의사소통을 도와주지 않으며 내 스스로 사전 뒤적여가며 말할 여건도 못 된다. 처음 사건 조서를 작성하려고 개인정보를 받을 때 내가 어찌나 말을 더듬거렸는지, 보다 못한 피의자가 대신 종이에 인적사항을 채워주었다. 싫어하는 흑인음악을 들으며 알지도 못하는 유머코드에 끼어들어 말을 섞어야했고  내 어색한 발음과 말이 그들에게 비웃음을 사도 대화를 포기할 수는 없었다. 여전히 미군들 농담 따먹기의 절반 정도는 못 알아듣고 그냥 흘린다. 화가 나서 감정이 흔들리면 영어론 말이 안 나온다. 특히 야간 파트너 곤잘레스나 보이어 같은 놈들한텐 그냥 우리말로 여러 가지 욕을 해준다.

이제 한 달 후면 나는  민간인이다.

 이제 한 달 후면 나는  민간인이다.
 

9월이면 학교에 돌아갈 것인데 단지 대학생활과 군대 앞만 보고 달려왔더니 자기소개서에 제대로 쓸 이력은 하나가 없다. 휴학하고 1년을 흔히 말하는 스펙 쌓기를 할까 싶은데 인턴이 된다 하더라도 서울에서 생활하려면 한 달에 30만원 벌고자 100만원을 써야하는 아이러니를 겪어야 한다. 난 소위 말하는 금수저가 아니니까.

그렇게 스펙을 만들어서 나는 어느 기업의 문을 두드릴까? 답답해진다. 곤잘레스 (키 190. 체중 100kg 넘을 듯) 그놈과 꼼짝없이 야간 패트롤 하는 그 기분이다. 입대할 때는 논산이라는 단어가 슬펐고 나에게도 전역이라는 날이 올까 싶었는데 이제는  전역이라는 단어가 다시 답답해진다.

내 목표 한 곳으로 나가도 될 자격이 있는 사람인가. 학생 때 수업 듣던 걸 생각해보면, 통역이나 번역은 어떠한 선이 있어서, 그 선을 넘길 능력이 있는 이와 없는 이가 구분되기 쉬웠다.  요행으로 수업 몇 개 에서 A⁺를 받아도 분명히 어딘가에 나보다 실력 좋은 사람은 있었고 그들의 통역을 들으며 고개를 숙였다. 내 통역의 수준이 군 생활 2년간 조금은 성장했다고 자평하지만, 여전히 ‘달이 아름답네요’ 는 생각해내지 못하는 풋내기이다. 그래서 흔들린다.

‘사랑 합니다’ 를 ‘달이 아름답습니다’ 라고 바꿀 생각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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