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계산은 남도의 명산으로 송광사와 선암사가 있는 불교문화의 중심이며, 순천사람의 주요한 삶의 터전이다. 
순천시 송광면 출신인 김배선 씨는 약 15년 동안 조계산과 그 주변 마을을 누비면서 주민의 이야기를 수집하고 현장을 답사한 자료를 토대로, 올 6월 ‘조계산에서 만나는 이야기’라는 책을 냈다.
이 책 주요 내용 중 일부를 김배선 씨의 동의를 받아 순천광장신문 독자들과 함께 공유하기 위해 연재한다. 편집국


 
선암사 입구의 옛 주차장과 동부도전의 중간지점 오른쪽 길옆에는 물고기(잉어) 화석 형태가 있는 바위가 있다. 이 바위는 부처님 말씀 중에 불자 제1계인 금 살생의 교훈을 알리기 위해 ‘잉어’가 박혀 화석이 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 온다. 순천 괴목에 거주하는 지막기 씨가 전해주는 구전에 따르면 물고기 화석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 화석이 된 잉어

오랜 옛날 선암사에 공부는 뒷전이고 제멋대로 말썽을 부리는 젊은 왈패 스님 한사람이 있었다. 밥이 적어 배고프다고 공양주들을 괴롭히고 법당에 올려놓은 공양을 몰래 내려 먹는가 하면 마을 사람들과 어울려 산속을 돌아다니며 짐승을 잡아먹기도 했다. 이러니 대중들 사이에 쫒아내야 한다는 여론이 비등했으나 노승들께서는 그저 모른 체할 뿐이므로 젊은 스님들도 직접 나서지 못하고 눈치만 보고 있었다. 만약 싫은 내색을 보였다가는 행패를 당해도 힘이 장사인 그를 어찌해 볼 수가 없으므로 아예 마주치지 않으려고 멀리서부터 피하는 것이 상책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원로스님들이 큰스님께 사정을 알리고 내보내야 한다고 건의했는데, 웬일인지 “그렇게 악행을 저지를 놈은 못되니 그냥 두라”고 하므로 어쩔 수가 없었다. 사실 왈패 스님은 중이 아니라 의협심이 강한 한양의 어느 양반 자제였는데, 역모자를 살인하여 선암사로 피신해 온 것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왈패 스님이 어디서 낚시대를 구해왔는지 어께에 낚시대를 둘러메고 내려와 바위가 있는 이곳 길 위에서 개천에다 낚시 줄을 드리우고 낚시질을 시작했다. 한동안 정신없이 물을 응시하고 있었다. 때마침 큰스님이 내려오다 이 광경을 목격하고는 분기탱천하여 천둥 같은 소리로 “너 이노~ 옴! 속세에서 살인을 하더니 법계에서도 살생을 일삼는구나!” 하고 주장자를 두드려 지축을 흔들었다.

갑작스런 벽력에 놀란 왈패 스님은 엉겁결에 낚싯대를 잡아채고 말았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아직까지 한 마리도 물지 않았던 낚시 줄에 큼지막한 잉어 한 마리가 막 물린 찰나였다. 장사의 순간적인 힘이 실린 낚시 줄은 잉어를 하늘로 날리더니 뒤에 있는 길옆의 바위에 부딪히며 그대로 박혀버리고 말았다.

이 일이 있고난 뒤 왈패 스님은 소리도 없이 선암사에서 사라지고 말았으며 세월이 흐른 뒤에 바위에 박혀버린 잉어는 화석이 되어 선암사를 찾는 사람들에게 금살생의 교훈을 일러주는 표석이 되었다고 한다.

(동)부도전의 화산대사탑과 상월선사비

선암사 매표소에서 선암사 방향으로 약 600m를 올라가면 길가에 ‘조계산 선암사’와 ‘선교양종 대본산’ 이라고 붉은 한자로 음각된 푯말형 입석이 있다. 이곳을 넘어가면 11기의 부도와 비석 8기가 보호구역 안에 정연하게 숲을 이루고 있는데, 이 곳이 선암사 탐방에서 제일 먼저 만나게 되는 (동)부도전이다.

동부도전에서도 관심을 끄는 것은 부도전의 제일 왼쪽에 잇는 화산대사 사리탑과 앞 열 가운데 비스듬하게 서 있는 상월선사 비이다.

화산대사 사리탑은 정교하게 조각된 네 마리의 사자가 받쳐 이고 있는 삼층석탑이다. 1920~30년 무렵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구례 화엄사의 국보 제38호인 4사자 석탑을 닮은 것으로, 선암사에서는 작품성이 가장 높은 탑이다.

▲ 화산대사탑

가운데의 상월선사 비는 모든 비석이 정방향인데, 유독 상월선사 비석만 비스듬하게 반우향을 하고 있어 탐방객들의 궁금증을 유발한다. 상월선사(1687~1767)의 법명은 새봉(塞篈)이고, 상월(霜月)은 호이다. 자는 혼원(混元)이다. 속성은 손 씨이고, 순천에서 태어나 15세에 출가하였다. 스스로 엄격하였고, 선암사의 강 맥을 잇는 대선사이다. 1759년에 큰 불로 선암사가 불에 탔을 때 대대적인 중창 불사로 절을 일으킨 스님이기도 하다.

▲ 상월선사비

상월선사가 입적한 후 세워진 이 비석의 모양을 두고 두 가지 전설이 전해져 온다.

첫 번째 전설은 상월선사가 입적하여 다비식을 거행하는데, 갑자기 거센 바람이 일어 관을 덮었던 영정이 하늘 높이 날아가 선사의 고향(전에 입산수도하던 곳)에 내려앉아 그곳 사람들이 열반 소식을 알고 찾아오는 기적이 일어났다고 한다. 그래서 영정이 날아간 쪽을 향하여 비석을 세우게 되었다는 것이다. 

두 번째 전설은 상월 선사가 선암사로 오기 전에 강원(講院)에서 후학을 지극히 사랑했던 선사께서 자기가 입적하고 나면 강원이 있는 방향으로 비석을 세워 달라는 유언에 따라 이와 같이 비석을 세우게 되었다는 것이다.

동부도전은 애초 선암사 일주문 앞 대각암(장군봉 등산로)과 대승암(송광사)이 갈라지는 삼거리에 있는 지금의 선각당(매점) 뒤편에 있었다. 그런데 1938~39년 무렵 지금의 자리로 옮겼고, 그곳에는 숯 창고를 지었다. 숯 창고는 1960년대에 철거되었고, 새로 옮긴 위치가 대웅전의 동쪽이므로 이때부터 동부도전이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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