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상훈
여수YMCA 사무총장
민주주의의 꽃이요 축제라는 선거가 코앞인데 어쩐 일인지 그다지 감흥이 느껴지지 않는다. 게다가 이번엔 ‘막대기’선거가 아닌 ‘선택’의 여지가 생겼는데도 호남 유권자들의 표정은 무덤덤하기만 하다.

정치판이 식상해졌다. 갈라져봤자 그 당이 그 당이요, 그 인물이 그 인물이다. 미워도 정권 바꿔야 하니 다시 한 번, 그래도 선수(選數)가 쌓이면 나아질지 모르니 다시 한 번 했던 희미한 기대마저도 이제는 사그라진 것 같다. 벌써부터 투표일에 어디로 놀러갈 것인지 궁리하는 소리가 들린다. 

선관위나 시민단체들이 그러면 안 된다고 열심히 투표참여 캠페인을 벌이지만 허공에 메아리인 것은 투표 무관심이 유권자 탓이 아니기 때문이다. 무관심할 수밖에 없게 만든 정치권의 탓이다. 그래서 투표율을 높이고 싶다면 애먼 유권자들 보다는 정치권이 획기적으로 변화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데 과연 정치권이 변화할까? 지독히도 비관적이다. 지난 19대까지는 그나마 변하겠다고 시늉이라도 내더니 이번 총선 국면에서는 여야가 아예 막장경쟁이라도 하는 것 같다. 민심이 천심이라는 말은 입에 발린 수사로도 들리지 않는다.

막장선거답게 정책도, 차별성도, 쟁점도 없어진 이번 선거의 유일한 관심은 여당 의석이 200석이 될 것이냐 180석이 될 것이냐이다. 200석이면 개헌으로 영구집권이 가능해지고 180석이면 차기정권 창출이 유력해질 것이다. 그런데도 야당은 쪽박을 깨 하나씩 쥐고 붙이자, 안 된다를 반복하고 있다.

상황이 이러하니 어쩔 수 없이 우리 유권자끼리 다시 머리를 맞대 대책을 강구할 밖에 도리가 없다. 어쩌겠는가, 임진왜란 이후 천형처럼 지워진 나라명운 감당의 짐을 우리 호남의 민초들은 아직도 벗지 못하고 있는 것을. 그래서 천덕꾸러기로 내쳐지다가 선거 때만 되면 몰려들 와 표 쓸어 담아가는 잡것들일지언정 ‘전략적인 선택’을 강요받기만 하는 것을.

그래서 시민단체들이 모여 논의 끝에 내린 총선 대응책은 두 가지 ‘무조건 행동’이다. 먼저 결과에 상관없이 무조건 투표한다. 그리고 정당에 관계없이 이런 후보는 무조건 찍지 않는다. 두 가지다.

막장에 맞선 우리의 전략인 만큼 시시콜콜 따지지 말고 무조건 투표하되 절대 찍어서는 안 될 기준을 정해 차선을 택하자는 것이다. 그 기준의 골자는 다음과 같다.

1. 민주주의 파괴 및 인권 침해사건 주도자.
1. 국민들을 위한 주요 민생입법에 대한 반대 주도자.
1. 성폭력 등 반사회적 행위로 물의를 일으킨 자.
1. 역사정의를 파괴하고 국정교과서 강행, 일본과의 위안부 합의 비호에 앞장선 자.
1. 탈핵에 반대하고 환경파괴에 앞장선 자.
1. 야권 분열을 주도한 자.

이렇게 뚜렷한 흠을 가진 후보가 얼마나 있을까 싶지만 우리 지역구 후보들을 꼼꼼히 살펴보면 상당수가 해당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잘 모르고 찍어줬다는 변명만으로 감당하기에는 이런 전력의 국회의원들이 저지를 국정농단과 정치파행의 폐해는 고스란히 우리 유권자들에게 되돌아오게 마련이다.

화창한 봄날에 기껏 우울한 미래를 예감해야 하는 세태가 더욱 섧다. 투표만으로 털어질 설움인지도 모르겠다. 우선 4월 13일, 무조건 투표하고 나서 기다려보자, 그 다음의 행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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