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수현
순천여고 교사. 순천대 강사
우리 회사 박 사장은 ‘범털’이다. 아버지가 직업 군인 출신인데, 일제 강점기에 창씨개명을 하고 혈서로써 일왕에게 충성을 맹세했다고 한다. 광복 후에 기업을 일으켜 혼자 오래 해먹다가 부하가 뒤통수를 치는 바람에 하루아침에 알거지가 되고 말았다. 우리 박 여사는 선친처럼 사장이 되기 위해 10년 간 절치부심했는데 치아가 거의 닳아질 무렵 마침내 권토중래하시었다. ‘여사장’은 세상에 드문 일이라 화제가 되었다.

그래서 그런지, 우리 박 사장은 사람을 믿지 않고 매사를 부정적으로 본다. 자기 뼈를 갈아 바칠 정도로 충성스러운 직원만 조용히 독대를 하여 힘을 실어 준다. 회사 고위 간부도 사장실에 들이지 않고 문서로 보고 받는 걸 좋아한다. 총애하던 간부라 해도 조금만 자기 비위에 거슬리는 말을 하면 ‘배신자’라는 낙인을 찍어 내쳐버린다. 어느 날 총무부장이 “사장님 패션 죽이네요!”라고 아부를 떨었는데 마님은 부정적으로 해석해서는 “내가 패션 테러리스트라고?” 발끈해, 총무부장이 땀을 한 바가지나 흘렸다는 전설은 유명하다.

우리 박 여사의‘뒤끝 작렬’은 세상이 다 아는 사실이다. 한번 찍히면 헤어 나오지 못한다. 용서, 화해, 이런 말은 사전 속에나 있지 우리 사장 머리에는 없다. ‘내일 지구가 멸망한다 해도 나는 미운 놈을 지구 끝까지 쫓아가겠다.’는 신조를 가지고 있다. 누가 어디서 어떤 말을 했는지 수첩에 깨알 같이 적어 두고 시간 날 때마다 들여다본다. 찍힌 사람은 일찌감치 승진을 포기해야 하고, 납품이나 하청은 언감생심 꿈도 꿔서는 안 된다. 박 여사는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야비하고 치졸한 방법을 총동원하여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는 끝판왕이다. 그러나 한번 잘 본 사람은 능력이 형편없어도 평사원에서 대번에 이사로 승진시키는 대범한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우리 사장은 성질머리가 개차반이고, 폭력적이다. 그녀는 흑백논리로 무장하여 적과 아군을 분명히 구분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다. ‘전부 아니면 전무’라는 단무지 초식을 자주 구사하신다. 그 초식은 수준은 낮지만 의외로 사람들에게 잘 먹히는 전술이다. 사장은 자기 마음에 거슬리는 말을 하면 즉각 눈에서 초강력 레이저빔을 발사한다. 그 레이저를 맞고 쫄지 않는 사람이 없다고 한다. 박 여사가 보톡스를 애용하시는 것은 레이저를 마구마구 쏘느라 생긴 미간의 깊은 골을 감추기 위함이다. 레이저가 통하지 않으면 폭언 신공을 꺼낸다. 그녀는 늘 10년 묵은 걸레를 입에 숨기고 다니다가 적시에 사용한다. 수가 틀리면 책상 내리치기, 문 쾅 닫기, 컵 팽개치기도 자주 한다. 회의하다 의자를 집어던져 유리창을 깬 적도 있다.

그녀는 미세먼지만 한 남의 잘못도 찾아내는 능력의 소유자다. 박 여사가 보통사람보다 한 옥타브 높은 톤으로 잔소리를 해대고, 비상한 기억력까지 동원해 20~30년 전 백악기 때의 실수까지 끄집어내 질책을 하면 살고 싶은 마음이 싹 가신다. 신경질과 짜증을 섞어 모멸감을 안겨 주는 게 그녀의 특기다. 남의 잘못을 침소봉대하여 고장난 녹음기처럼 무한 반복하여 사람을 미치게 만든다.

그러나 자신의 실수나 잘못은 절대 사과하지 않는다. “간부와 평사원의 임금 격차를 줄이겠다.”고 그녀는 수십 번 약속했다. 그런데 그걸 헌 짚신처럼 팽개쳐 놓고는 “사람은 원칙과 약속을 지켜야 한다.”고 말했다. 회사 사람들은 그걸 ‘유체이탈화법’이라고 멋들어지게 명명하였다. 자기만 옳고 남은 다 그르다. 자기는 정상이고 남은 다 비정상이다. 상식과 말이 통하지 않는 박 사장님은 무오류의 인간이자 전지전능한 신이시다.

그러고 보니 우리 회사 사장과 우리 집 마님(남들은 ‘아내’라고 부르더라만)은 매우 닮았다. 내가 집에서 설거지, 빨래, 청소를 하며 최선을 다해도 우리 집 마님은 먼지 하나만 보여도 벌컥 화를 낸다. 빚이 늘고 있으니 소비를 줄이자고 건의하면 우리 집 마님은 “돈을 이것밖에 못 벌어 오냐?”며 적반하장 호통을 친다. 안에서 구박 받고 밖에서 무시당하는 나. 앞뒤가 절벽이다!

☆추신: 이 이야기는 제가‘꿈에 친구를 만나보고 들은 걸’정리한 것입니다. 혹시라도 이 글을 특정 개인과 연관시켜 상상하시는 건 정중히 사양합니다.
 

저작권자 © 순천광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