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경식
순천소방서 소방관
새벽녘 ‘00동 00아파트 00호 화재출동’이라는 지령이 내렸다. 근무지에서 가까운 곳이지만 서둘러야 한다. 아파트 진입로가 좁아 화재현장까지 빨리 진입을 할 수 있을지 걱정이었다. 아파트 진입로 양쪽으로 주차된 차량이 많아 곡예운전을 해야 들어갈 정도로 폭이 좁았다. 간신히 아파트 단지에 도착했는데 또 다른 난관에 봉착했다. 90도 직각의 진입로인데 회전구간에 차량이 주차되어 있었다. 함께 타고 있던 경방대원이 먼저 내려 신고된 장소로 뛰어가 상황을 판단하기로 하고, 펌프차량은 오랜 시간에 걸쳐 현장에 도착하였다.

화재 신고가 된 아파트는 음식을 조리하던 사람이 잠깐 졸면서 음식물이 탔고, 음식물이 탄 냄새를 맡은 이웃집에서 신고를 한 것이었다. 화재로 번지지는 않았지만, 실제 화재가 발생했다면 아파트 진입로에 주차된 차량 때문에 화재 진압의 골든타임인 5분을 넘기게 되었을 것이다. 나 하나 편하자고 회전 구간에 차량을 주차하면 화재 발생 때 소방차의 진입이 늦어지고 늦어지는 시간만큼 귀중한 생명이나 재산 피해는 커지게 된다.

실제로 2013년 2월, 건물 8채와 점포 19곳을 태우고 부상자가 7명이나 발생했던 서울 인사동 화재는 소방차 진입이 어려운 먹자골목이었는데, 불법주정차로 인하여 소방차 진입이 늦어지면서 귀중한 생명과 막대한 재산상의 피해가 발생한 대형화재가 되었다.

또 몇 년 전에는 서울의 고지대 주거 밀접지역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그런데 화재가 난 주택 입구 회전구간에 주차된 차량 때문에 소방차가 올라가지 못하고, 약 200m 정도(소방호스 20본 필요)를 소방호스를 펼쳐서 화재를 진압할 수밖에 없었다. 소방차가 화재현장과 가까운 곳에서 화재진압을 하면 그만큼 신속한 화재진압을 할 수 있지만, 원거리에서 소방호스를 펼쳐 진압을 하게 되면 그만큼 화재 진압이 늦어지게 된다.
최초 발생한 화재를 제대로 진압하지 못하면 옆에 있는 주택으로 번지게 되고, 화재로 인한 피해가 커진다. 화재가 난 주택을 제대로 진압을 하지 못하고 옆 주택으로 번지는 것은 명백히 화재 진압을 담당하는 소방관의 잘못이다. 서울 고지대의 주택 화재의 경우 옆 주택 주인으로부터 화재를 제대로 진압하지 못하여 발생한 피해인 만큼 보상하라는 진정이 들어왔다. 소방서에서는 화재진압이 늦어진 경위를 조사하던 중 도로 회전 구간에 차량을 주차하여 소방차가 진입하지 못하게 만든 차량 소유주가 화재가 확대되어 옆 주택으로 번져서 피해를 본 주인이었다.

화재를 초기에 진화하지 못하면 대형화재로 이어질 수 있다. 이의 예방을 위해 상습 불법주정차 단속, 장애물 제거가 곧 시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밑바탕이 된다. 소방차의 진입이 어려운 주거 밀집지역이나 재래시장 등의 상가지역은 화재가 발생할 경우 대형화재로 이어지기 쉽다. 이에 따라 상습 불법주정차 지역에 대한 지방자치단체, 경찰서, 소방서에서는 불법주정차 합동단속과 재래시장 등 상가지역의 장애물 제거를 통해 소방차의 진입로를 확보하고 있다.

필자도 아파트에 거주하기 때문에 주차공간이 부족한 상황을 잘 알고 있지만, 회전구간에는 절대 주차를 하지 않아야 한다. 나 하나의 편리를 위해서 주정차를 멋대로 하는 것은 곧 나 자신과 이웃의 생명과 재산을 해치는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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