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정우
민들레하나한의원
원장
선거는 민주적인 제도일까? 장 자크 루소는 “대의제에서 인민은 주권자가 아니라 노예”라고 했다. 선거철에만 주인일 뿐 투표를 끝내고 나오는 순간 노예의 삶으로 돌아간다는 얘기다. 애초 선거는 귀족들의 집권을 위해 만들어진 ‘대표 선발 제도’였다. 현대에도 많은 나라에서 당선된 의원을 보면 상층 편향의 결과가 뚜렷하다. 대의제 민주주의에서 사회 상층의 후보가 선호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그런 후보는 교육 수준이나 직책에서 대개 일반인보다 높고, 재산이나 명성을 가진 사람이다. 엘리트(elite)라는 말이 선거(election)와 어원이 같음은 이를 뒷받침한다.

이번 20대 국회의원 선거 입후보자 930명의 평균 재산은 21억 원을 넘는다. 그리고 현 의원을 포함해서 정치인은 547명, 변호사 76명, 교수 41명, 의사와 한의사 13명이며, 이들을 합하면 677명으로 70%를 넘는다. 그에 반해 농업인 10명, 노동자도 10명뿐이다. 선거는 한마디로 배부른 자, ‘그들만의 리그’다.

한국 대의 민주주의의 고질적인 문제는 선출된 정치인이 ‘주권자’의 절박한 생활상의 요구를 ‘대의’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국민의 요구를 대의하지 않고, 공천장을 준 자를 대리하는 것은 민주주의가 아니다. 그들은 선거철에는 국민에게 머리를 조아리며 공약을 외치지만, 당선 후 임기 내내 오직 다음 선거에서 이길 궁리에 여념이 없다. 그렇지 않다면, 헌정 질서를 위태롭게 한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이나 온 국민을 슬픔의 도가니에 몰아넣은 세월호 참사 사건을 등한시할 수 없다. 또 개인소득은 감소하는데 기업소득은 증가하여 불평등이 가중되고, 부의 세습이 고착되는 경제 상황을 보고 있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희망을 찾아 헬조선을 탈출하는 청년들이 늘어나고, 10~30대 사망 원인 1위가 자살인 사회 상황 등은 애초 일어날 수 없다.

어처구니없이 돌아가는 정치판, 왜 그럴까? 꼽으라면 손이 부족하나 불합리한 선거제도를 두고 다른 것을 먼저 생각할 수는 없다. 지역구 중심의 소선거구제는 보수 양당체제를 공고히 하고, 새로운 전망을 가진 정치세력의 진입을 가로막는다. 이의 근원적 대안은 모양만 그럴듯한 대의민주주의의 극복이지만, 현실적 대안은 의석 과반 이상을 비례대표에게 할당하는 것이다. 스웨덴식 비례대표제가 대안이 될 수 있다. 수학자가 설계하여 매우 복잡하고 쉽게 이해할 수도 없는 스웨덴의 비례대표제이지만, 소수자를 포함하는 국민의 의사를 정확하게 반영하기 위한 장치로 설계되었으며, 의석 비율을 보면 거의 민의와 합치된다.

이에 반해 한국의 선거제도는 국민의 의사를 배제하기 위한 장치다. 지난 19대 총선에서 새누리당은 영남에서 54.7%의 지지율로 무려 94%의 의석을 차지했고, 민주당은 호남에서 53.1%의 지지율로 83.3%의 의석을 얻었다. 즉, 반절 이상의 민심을 사표로 만들어 자신들의 기득권을 공고히 했다. 이의 결과는 국민의 낮은 투표율이다. 한 연구에 의하면 ‘국민의 정치적 의사표출을 제한하기 때문에 정치에 무관심하다’고 결론 내렸다. 정치의 변화는 선거제도의 개혁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이러한 희망을 위해 이번 선거를 어떻게 맞이해야 하는가? ‘그 나물에 그 밥’이라며 먼 산 바라보듯 할 수는 없다. ‘오십보와 백보’는 분명 다르다. 더구나 고인 물은 썩기 마련이다. 새로운 시각으로 사회를 보고 미래를 개척하는 세력은 언제나 소수에서 시작한다. 이번 총선을 계기로 선거제도를 개혁하려는 움직임이 시작되기를 기대한다.

순천민들레하나한의원 원장 이정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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