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계산은 남도의 명산으로 송광사와 선암사가 있는 불교문화의 중심이며, 순천사람의 주요한 삶의 터전이다. 
순천시 송광면 출신인 김배선 씨는 약 15년 동안 조계산과 그 주변 마을을 누비면서 주민의 이야기를 수집하고 현장을 답사한 자료를 토대로, 올 6월 ‘조계산에서 만나는 이야기’라는 책을 냈다.
이 책 주요 내용 중 일부를 김배선 씨의 동의를 받아 순천광장신문 독자들과 함께 공유하기 위해 연재한다. 편집국




▲ 독아지소

독아지소(용머리소)는 선암사 주차장 매점 뒤편의 옹벽 낭떠러지 아래 있다. 상가로 들어가는 다리 위에서 내려다보면 제 모습을 보기 어렵지만 40여 미터 아래에 독아지소가 보인다.

바위 계곡으로 쏟아지는 물줄기와 소가 어우러져 경관이 아름답기 그지없지만 ‘소’의 물이 깊고 위험하여 출입하지 못하도록 막아 놓았다.

현재 선암사천의 ‘소’들 중에는 물이 가장 깊고 큰 ‘소’이다. 소의 이름은 ‘독아지소’ 또는 ‘용머리소’라고 부른다. ‘독아지’는 독의 방언이다. 독은 사전에 운두가 높고 배가 부르며 전이 달린 큰 질그릇이라고 풀이한다.

우리 지역에서는 커다란 항아리를 독아지(도가지)라고 부른다. 독아지소는 모양이 둥글고 깊은 독아지를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그러나 독아지소는 독아지란 이름과는 달리 용머리에 관한 이야기를 더 많이 들을 수 있다.

‘소’의 위치보다 약간 아래이긴 하지만 선암사 쪽으로 볼 때 오른쪽 언덕 밑 물가의 바위에 둘레가 한 아름 정도이고, 깊이가 60~70cm 크기의 둥근 구덩이가 있다. 물이 불어나면 물에 잠기고 만다. 주민들은 예전에는 매우 깊었다고 증언했다. 용이 그 곳에 앉았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용이 머리를 숙여 물을 마신 곳이라고 설명하는 사람이 더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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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선암사의 왼쪽 청용 줄기(머리)가 선암사를 감싸고 옥아들다 달띠기에서 허리를 펴고 뻗어 내려 머리를 내민 곳이 현재 주차장의 당산나무가 서 있는 곳으로 그 구덩이가 있는 곳이 용의 혀가 닿는 곳에 해당한다. 그래서 그 구덩이가 용이 물을 마신 곳이라는 것이다. 지금은 메워지고 약간의 흔적만 남아있다.

선암사로 들어오는 길이 나기 전에는 그곳까지 산의 줄기가 이어져 있었으나 끝이 잘리더니 주차장을 넓히는 공사로 모두 조각이 나버렸다. 용머리소는 용의 머리가 닿아있는 곳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매우 아름다운 경치를 가진 곳을 위험하다고 버려져 양측 상가 건물의 사이에 끼어 통행이 어렵고 자유롭게 들어갈 수 없게 된 것이 매우 안타깝다. 주변을 정비하고 안전장치를 한다면 좋은 볼거리가 될 만한 곳이다.
 

선암사 다비장

▲ 깽깽이골 (승려의 시신을 화장(다비)하기 전에 극락왕생을 비는 제를 올렸던‘미타전’이라는 건물이 있었던 곳)

선암사의 다비장은 지금의 자리인 지계골 입구로 옮기기 전까지는 선암사 매표소 건너편 시양골 입구(선암민박 자리)였다.

‘다비’란 우리말의 화장과 같은 불교용어로서 고대 인도의 표준(고급) 문장어인 산스크리트어(梵語)이며 ‘불에 태운다. 육신을 원래의 곳으로 돌려 보낸다’는 뜻이다.

불교에서는 승려가 입적하면 화장을 하므로 전통의 본산(큰절)에는 다비장을 갖추고 있었다. 다비장이라 해도 화장을 위한 직접적인 시설은 없고 평지에 나무(장작)를 쌓고 그 위에 시신을 올려 화장을 하므로 일반인들은 장소를 의미하는 화장터로 부르는 것이다. 다만 절에 따라서 다비장에서 멀지 않은 곳에 전각을 세워 제를 올리고 집기를 보관하는 용도로 사용하는 경우가 있었으나 이제는 거의 찾아볼 수가 없다.

혜운(慧雲) 노장(선암사 전 주지)에 의하면 선암사 전통의 다비장은 시양(한)골 입구인 매표소 건너편 ‘선암민박’ 자리에 있었다.

그것을 1938~9년 무렵 이동석 스님 주도로 현재의 위치인 지계골 입구로 옮겼으며, 다비식을 주관하는 건물이 있었으나 한국전쟁을 거치는 동안 폐허가 되어 훼철되었다. 옛 다비장을 옮기게 된 이유는 기억하지 못했지만 일본 유학파인 이동석 스님이 감리로 있으면서 선암사에 많은 사업을 하였는데, 다비장도 그중의 하나라고 한다. 

다비장을 옮기기 전의 시설 개선 작업의 일화로 관을 올려놓기 위한 단을 철근으로 만들었으나 화력을 못 이겨 철이 녹아내려 포기한 적이 있다는 사연을 들려주며 껄껄 웃었다.
 

다비장 제실 ‘미타전’
선암사의 매표소 뒤편 약 50m 지점의 길 건너편 시양골 입구를 굽어보는 형태로 엎드린 커다란 바위 하나와 자연석으로 쌓은 암자 터로 보이는 길이 20m, 높이 1m 가량의 축대(건물터)가 있다.  

이곳이 선암사 승려의 시신을 화장(다비)하기 전에 극락왕생을 비는 제를 올렸던 ‘미타전’이라는 건물이 있었던 곳이다. 제실인 ‘미타전’을 언제 세웠는지는 기록이 없어 알 수가 없으며 이 골짜기의 이름을 깽깽이 골이라고 부르는 것도 제를 지낼 때 연주하는 악기의 소리가 깽깽하고 들린다는 소리에서 비롯된 소리시늉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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