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변황우
순천제일대학교 평생교육원장/공학박사
요즘 각 당의 공천 심사와 경선후보 선정이 한창이다. 이 과정에 야권연대와 지난 2일에 끝난 필리버스터가 많은 국민의 관심을 끌었다.

필리버스터(filibuster, 의사방해)는 의회에서 다수파의 독주를 막기 위해 이뤄지는 합법적 의사진행 방해 행위이다. 장시간 연설과 규칙 발언 연발, 각종 동의안과 수정안의 연속적인 제의, 출석 거부, 총퇴장 등을 수단으로 하며, 미국, 영국, 프랑스, 캐나다 등에서 시행되고 있다. 우리나라 국회도 테러방지법 통과 저지를 위한 필리버스터가 2월 23일 오후 7시경부터 3월 2일 오후 7시경까지 무려 192시간 넘게 진행되었다. ‘필리버스터 정국’에 대한 평가는 여·야 간, 지지층에 따라 극과 극으로 갈리지만 ‘필리버스터’의 인터넷TV 누적 시청자가 510만 명에 이르고, 일부 필리버스터 참가 정치인에 대한 후원금이 폭발적으로 증가하였다. 필리버스터를 보기 위해 국회 방청석이 매진되는 등 필리버스터에 대한 일반 시민의 관심과 열광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필리버스터는 국회 선진화법에 기인한다. 국회 선진화법의 입법 취지는 다수당의 일방적인 법안 처리를 막기 위한 것으로 2012년, 18대 국회의 마지막 본회의에서 입법하였고, 19대 국회부터 적용하였다. 국회 선진화법은 천재지변이나 전시·사변 등 국가 비상사태가 아니거나 교섭단체 대표와 합의가 없을 경우 국회의장이 법률안을 본회의에 직권 상정할 수 없게 했고, 예산안은 매년 11월 30일까지 위원회가 심사를 마치지 못한 경우 자동으로 본회의에 부의된 것으로 본다는 게 핵심이다. 즉 예산안을 제외한 법안은 원칙적으로 국회의장의 직권에 의한 본회의 상정이 금지되는 것이다. 따라서 이번 테러방지법에 대한 국회의장의 직권상정에 대한 적법성 논란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이번 필리버스터를 보면서 많은 사람이 “필리버스터라는 제도가 있었네. 다수의 결정에 합법적인 방법으로 저항하며 문제점을 알릴 수 있는 제도. 이런 필리버스터와 같은 제도가 꼭 국회에만 필요할까? 우리가 사는 사회에도 필리버스터와 같은 제도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졌을 것 같다. 물론 필리버스터가 갖는 문제점과 한계는 있다. “소수의 의견으로 다수의 의견을 방해하는 상황이 다수결의 원칙을 표방하는 민주주의에 역행하는 행위가 아닌가?”라는 반론이다.

하지만 국회 선진화법과 필리버스터가 없었다면 어땠을까? 선진화법이 없었으면 테러방지법을 막기 위해 야당의원들은 점거 농성과 몸싸움을 하였을 것이고, 여당은 소위 날치기를 강행했을 테고, 그러면 언론은 폭력적인 국회만 부각시켰을 것이다. 국민은 어설픈 양비론으로 싸잡아 비난했을 것이다. 결국 많은 사람이 “국회의원은 하나같이 똑같다”며 국회에 염증을 더 많이 느끼게 되었을 것이다. 또 필리버스터가 없었다면 서강대 서복경 현대정치연구소 연구교수가 이야기한 것처럼 “국회의원이 국회라는 제도적 공간에서 국민의 기본권을 얘기하고, 사회적 약자를 위해 눈물을 흘리거나 분노하는 모습 자체를 보지 못했을 것”이다. 
 
그럼 필리버스터가 필요한 곳은 어디일까? 국회뿐 아니라 힘과 권력, 다수의 의견으로 소수의 목소리를 억누르고, 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지 않는 곳. 예컨대 갑을 관계처럼 사회적으로 불평등한 곳, 나이의 차이, 성별의 차이로 인한 차별이 존재하는 곳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 사회에는 필리버스터가 필요한 곳이 너무 많다. 가정과 학교, 직장과 사회 등 곳곳에 있는 갑을 관계에 필리버스터가 필요하다. 우리 모두 필리버스터가 필요 없는 정의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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