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상준
소설가, 논설위원장
우수 지나고 경칩도 지났습니다. 봄비 많이 내렸습니다. 개울과 물웅덩이엔 개구리 나섰고, 까맣게 알을 쏟아놓았습니다. 매화 피고, 동백 또한 망울 부풀었습니다. 봄입니다. 허나, 시절은 봄이되, 이 땅의 사람 사는 세상은 겨울입니다. 춥습니다. 제 125호 광장시론의 제목처럼 한반도의 운명이 어둠의 블랙홀로 빠져 들어가는 듯합니다. 이런 시절이 참으로 서글픕니다. 이러한 때, 봄 담은 시 몇 편 보고 싶어졌습니다. 영화 ‘동주’를 보고나서 든 생각입니다.

어두울 때면
서로의 목소리로
길이 되자 하고
 달이 뜨면
서로서로의 목소리로
꿈이 되자 하고

-임길택의 ‘개구리’,  할아버지 요강』
 
 

툭,
봄비에 열리는/ 망울 꽃망울

딱,
죽비 소리에 얻는/ 환한 생각 하나

 -김인호의 ‘山寺에서’, 『섬진강 편지』
 
 

창호지 문에 대그림자 어른거린다
봄새벽에 낙숫물 소리를 듣다
비 들이치는 마룻깃에 앉아
한때의 딱새가 분분히 꽃을 날리던
담장 옆 자두나무를 본다
축축 늘어진 가지의 꽃잎이
한순간의 생처럼
비바람에 떨어져
빗물이 흘러간다

적적한 뒷산에서
산안개가 몰려왔다.

 -송만철의 ‘봄새벽’, 『참나리꽃 하나가』
 

봄이 血管 속에 시내처럼 흘러
돌, 돌, 시내 차가운 언덕에
개나리, 진달래, 노오란 배추꽃

三冬을 참어온 나는
풀포기처럼 피어난다

즐거운 종달새야
어느 이랑에서나 즐거웁게 솟쳐라
푸르른 하늘은
아른아른 높기도 한데…

 -윤동주의 ‘봄’,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일제의 폭압 하에서 윤동주는 시가 쉽게 써진다고 아파했습니다. 그런 ‘동주’가 눈물 쏟게 했습니다. 이 땅의 수상한 봄날이지만, 봄 담은 시, 한 편이라도 만납시다. 그런 마음으로, 얼어붙은 이 땅을 희망의 봄으로 일궈냅시다, 봄입니다.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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