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심명선
어린이책시민연대
전 대표
도회지에서 시골 마을 작은 학교로 발령을 받아, 6학년 담임을 맡게 된 김 선생님. 김 선생님과 처음 만나던 날, ‘공부는 뒤떨어지나 정직하고 맡은 일을 열심히 하는’ 보선이는 김 선생님의 책상에 진달래꽃을 한아름 꺾어다 꽂아놓았습니다. 그 뒤로 꽃이 채 시들기도 전에 보선이는 새로운 꽃으로 바꿔놓습니다. 아이들이 김 선생님께 꽃의 이름을 묻지만 대답을 해 줄 수가 없습니다. 다른 선생님들께 물어보지만 시험에 나오지도 않는 꽃 이름을 알아서 무슨 소용이냐며 농담으로 넘겨 버립니다. 그런 대답을 들을 때마다 바늘에 찔린 듯한 느낌을 받았던 김 선생님은 보선이가 꺾어온 꽃들을 하나하나 정성껏 스케치합니다. 가정 실습 기간에 책방을 뒤져 식물도감을 산 김 선생님은 보선이가 꺾어온 꽃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알게 되지요. 처녀치마, 얼레지, 둥굴레, 은방울꽃. 이름을 하나하나 적어갈 때마다 무슨 보물이라도 찾은 양 즐거워합니다.

그런 보선이가 장 심부름을 하느라 오후 수업에 늦게 되고 선생님께 크게 꾸중을 듣게 됩니다. 그동안에도 일찍 가야한다는 보선이의 사정을 건성으로 받아넘겼던 선생님은 그 날 보선이가 손전등을 들고 학교에 다닌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보선이 집에 가봐야겠다고 생각한 선생님은 여름 방학을 앞둔 어느 토요일 오후에 따릿골을 찾아가게 되지요. 보선이가 학교에 오가다 어느 곳이든 찾아들어 발도 씻고 얼굴도 닦으며, 목마르면 맘껏 들이마실 개울물도 지나고, 옥수수 밭에 둘러싸인 한가로운 집들도 지납니다. 더 이상 자전거를 끌고 갈 수 없는 산길에 들어서자 옥수수밭에 자전거를 밀어놓고 걷기 시작합니다.

‘나무들은 혼자서만 넓은 땅을 차지하려 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자기들이 서 있는 곳 말고는 풀씨 하나에까지 터를 내주어 함께 살자고 했습니다. 그뿐 아니라 서로 가지를 주고 받으며 하늘을 함께 채우고, 키 큰 나무들은 가지를 높이 달아 아래 하늘을 키 작은 나무들에게 내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숲 속엔 늘 평화가 깃들어 있는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세상을 향한 작가의 따뜻한 시선에 가슴 한켠이 훈훈해지는 대목입니다. 작고 여리고 하찮은 것과 기꺼이 함께 하겠다는, 그리하여 더불어 함께 행복한 세상을 만들어 나가고자 했던 작가의 삶이 고스란히 녹아있는 듯 합니다.


 

책장을 한 장 넘기자 보선이가 걸었던 숲 길이 화면 한 가득 펼쳐집니다. 싱그러운 숲 냄새, 들꽃 냄새가 책장을 타고 그대로 전해지는 듯 했습니다. 손끝에 파랗게 풀물이 들어가는 선생님. 이런 아름다운 길을 걷는 아이라면 마음도 더 없이 아름답게 자랄거라는 선생님의 독백은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짓게 합니다. 날이 어두워지고 별들이 돋아나고서야 보선이네 집에 다다른 선생님. 그곳엔 다섯 집 뿐인 마을 사람들이 모두 모여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30년전 학교가 생긴 이래 마을을 찾아준 건 김 선생님이 처음이었지요. 감자떡, 메밀묵, 옥수수술 같은 가장 귀한 음식으로 대접을 받고, 잠자리에 누워서도 선생님은 자꾸만 머나먼 나라에 와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겨울이 되어 눈이 많이 내리게 되자 보선이는 내리 결석을 하게 되고, 결국 졸업식에서도 볼 수 없게 됩니다. 군입대를 위해 고향으로 가야 하는 선생님은 보선이에게 줄 <안네의 일기>를 이웃 반 선생님께 맡긴 채 창 너머 흰 눈을 바라보며 눈시울이 뜨거워집니다. 보선이도 그 눈을 바라보고 있을거라는 생각으로 말이죠. 선생님의 어깨 너머로 늦가을 보선이가 꺾어왔던 노박덩굴이 그때의 노란 빛을 간직한 채 걸려 있었습니다.

강원도 산마을과 탄광마을에서 15년 동안 아이들을 가르치셨던 임길택 선생님. 돌아가시기 전까지 아이들을 진정 사랑하고 아픔을 함께 보듬어주셨던 선생님의 모습이 그대로 느껴지는 책이었습니다. 아름다운 그림은 감동을 북돋아 주는듯 합니다. 들꽃의 향기를 머금은 우리들이 되었으면 하는 소망이 들게 만든 책입니다. 삶의 자리자리 그 결마다 싱그러운 빛깔 가득한 숲의 냄새가 풍겼으면 좋겠습니다. 그리하여 김 선생님의 소망처럼 ‘공부를 잘하여 수나 우를 받는 것도 좋지만 어려운 친구를 도울 줄 알고 맡은 일을 끝까지 잘 해내는 사람으로, 풀씨 하나하나에도 터를 내주며 더불어 함께 사는’ 우리가 되길 소망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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