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성호
순천대 인문학연구소 소장
미국에서 샌더스 돌풍이 일고 있다. 보수적 양당구조의 미국에서 상원의원 버니 샌더스가 2016년 민주당 뉴햄프셔주 예비선거(프라이머리)에서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을 22.4% 차이로 꺾었다. 이후 샌더스 지지도가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 이 때문에 미국뿐만 아니라 세계가 샌더스의 갑작스런 등장에 주목하고 있다.

샌더스는 선거에서 진보적인 정책을 제시하고 있다. 최저임금 인상, 국민의료보험 실시, 부자 증세, 공립대 무상교육, 군비 축소와 인프라투자 증대 등을 제시하면서 미국 상위 1% 중심의 기존 정책을 비판하고 있다. 이러한 정책에 걸맞게 선거자금도 월스트리트와 같은 소수 재력가들의 거액 정치헌금이 아니라 다수의 소액 정치헌금에서 마련되고 있다.

샌더스 돌풍은 미국 중산층의 몰락과 긴밀한 관계가 있다. 최근 블라디미르 플라토프(Vladimir Platov)는 칼럼에서 미국 중산층 몰락의 지표로 미국인의 절반이 최소 생존수준의 임금(시간당 16.8달러)보다 적게 벌고, 중산층이 미국 전체 총 세입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종전 62%에서 최근 43%로 떨어졌다는 점을 들었다. 미국 경제의 지속적 침체로 인한 중산층의 몰락이 진보적 정책의 출현을 부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샌더스는 자신을 민주사회주의자(Democratic Socialist)라고 말하면서 덴마크, 노르웨이, 핀란드 등의 북유럽 국가 시스템을 추구한다고 밝힌다. 그에게 있어 민주사회주의는 “부자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을 위해 작동하는 경제를 만들어내는 것”을 의미한다. 샌더스가 승리하거나 끝까지 힐러리 클린턴과 경합을 유지한다면 보수적 양당구조로 이루어진 미국정치가 유럽형 정치구조로 변화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유럽은 전통적으로 양당구조보다는 다당 구조였고, 사회민주주의 이념을 반영하는 진보정당이 주요한 축을 이루고 있다. 영국 노동당, 프랑스 사회당, 독일 사회민주당 등이 모두 사회민주주의 계열의 정당이다. 아직 선거초반이어서 최종 선거결과가 어떻게 나올지는 예단하기 어렵다. 그러나 1896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미국 민중당(Populist Party) 패배 이후 진보적인 정책이 미국 유권자들 다수 관심사로 부각되었다는 것 그 자체만으로 역사적 사건이다.    

미국의 샌더스 돌풍은 한국의 정치적 보수화를 다시 돌아보는 계기가 되고 있다. 분단구조, 북핵 위기, 중산층의 축소, 경제 침체 등으로 한국의 국내외 정치상황은 미국이나 서유럽보다 훨씬 어려운 상황이다. 어려운 정치상황을 풀어나가는 데는 다양하고 유연한 정치적 해법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4월 총선과 내년 대통령 선거를 앞에 놓고 재편되고 있는 한국의 정치지형은 ‘국민의당’ 출현과 더불어 전반적으로 보수적 성향이 강화되고 있다. 현재의 경직된 정치지형으로 어려운 난국을 해쳐나가기도 어렵다.
미국의 샌더스 돌풍을 계기로 한국정치 지형에도 복지체제 확산, 중산층 복원, 한국경제의 세계적 경쟁력 확보,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선도할 수 있는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정책들이 올해와 내년 선거상황에서 제시되기를 기대한다. 

또 한국 정치지형의 재편과정에 호남이 진보적인 정책 확산의 구심점이 되기를 기대한다. 호남은 전통적인 야당의 지역정치 볼모에서 벗어나 정책과 인물에 근거한 새로운 정치로 나아갈 필요가 있다. 순천, 여수, 광양을 중심으로 한 전남 동부지역은 호남에서 정치지형이 가장 열려있는 곳이다. 우리 지역이 새로운 한국정치의 지형을 제시하는 장이 될 수 있다. 전남 동부지역의 시민사회는 새로운 가능성을 현실화할 수 있는 방안을 함께 모색해 나갈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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