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정우
순천민들레하나한의원 원장
순천에도 눈이 왔습니다. 정확하게는 순천 도심지에 눈이 내렸다고 해야 맞지요. 같은 순천시라도 별량이나 외서, 송광 등 서쪽엔 제법 눈 구경을 자주 할 수 있지만, 도심지에는 연중 1~2회 정도나 소복하게 쌓인 눈을 볼 수 있지요. 어디서나 하늘거리며 내리는 하얀 눈이 좋겠지만, 순천에선 첫 미팅처럼 마음이 설렙니다.

새벽, 눈 내리는 거리는 조용합니다. 차도 안 다니고 사람들도 보이지 않습니다. 세상이 고요한 이유는 마음이 가라앉거나 움직임이 적어진 탓도 있겠지만, 눈 자체의 소리를 흡수하는 성질도 한몫합니다. 눈은 솜사탕처럼 부풀고 속이 텅 비어있는 모양이지요. 눈 입자도 그렇다더군요. 우리가 알고 있는 육각형뿐만 아니라 판 모양이나 기둥 모양의 눈 입자도 있는데, 그 모두 듬성듬성해서 사이사이에 공기가 들어있습니다. 빈 공간은 소리라는 파동이 전달되지 못하고요. 그러니 눈이 세상의 소리를 먹어버리지요.

눈은 소리를 흡수하는 데 비해 비는 소리를 더 잘 전달합니다. 수증기가 소리를 잘 전달하도록 매개체 역할을 하는 것인데, 전달 속도가 공기보다 물속은 4배나 빠릅니다. 그런 면에서 보면 눈보다 비가 더 민주적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정쟁이나 논란을 억압하는 것보다 자유로운 의견 개진을 장려하는 것이 민주주의에 가까우니까요. 민주주의 자체가 원래 비처럼 시끄럽다고 합니다. 권위주의는 눈처럼 조용하고요. 요즘 세태의 분란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니, 결과가 좋기를 바랍니다.

 
누군가 ‘눈 같은 사람 되지 말고, 비 같은 사람 되어라’고 했지요. 눈은 보기에 하얗고 깨끗한 것 같지만 지저분하며 특히 눈 맞은 사물은 더러워집니다. 비는 내릴 때는 추적추적 꿉꿉하지만 먼지와 오물을 씻어내려 그 후 세상 만물을 깨끗하게 하지요. 요즘에는 황사나 방사능이 섞인 비를 맞으면 더 더러워지기도 하지만요. 여하튼 사람도 지금 당장보다는 이후가 더 중요하고, 눈으로 보이는 것이나 일시적 느낌보다는 그 쓰임이나 본성을 잘 살펴야 한다는 가르침이겠지요.

눈이나 비 모두 하늘에서 내려온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내리는 것은 그전에 올라간 것입니다. 돌고 도는, 순환하지요. 그런데 막히면 돌지 못하고 결국 체이고 쌓여서 터지고 맙니다. 사람 몸에서부터 사회나 세계도 흐르고 돌지 못하면 막히고 터지게 됩니다. 몸 안에서도 오르내리며 흘러야 하지만, 음식이 쌓이면 체하고, 피가 쌓이면 어혈이 되고, 수분이 쌓이면 담음이 되고, 기분이 쌓이면 우울하게 됩니다. 세상에서도 아래가 위가 되고 위가 아래가 되어야 합니다. 엎치락뒤치락 오르내리는 것이 세상을 병들어 썩지 않게 하는 기본 질서가 아닐까요?

인간의 탐욕이 빚은 지구 온난화의 결과로 인한 폭설을 봅니다. 설레기만 하는 마음 한 켠의 읊조림이 시퍼렇습니다. 

순천민들레하나한의원 원장 이정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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