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병섭
순천공고 역사교사
새해가 되면 교사들은 섭섭함과 기대감이 교차한다. 한 학년 동안 아웅다웅 살아온 아이들과 석별을 하고, 새로 만나는 아이들과 한 해를 어떻게 보내야 할까 준비하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 이래로 어떻게 싸워서 우리를 지킬 것인지 생존의 문제가 앞서면서 이런 평온함은 깨어져 버렸다. 특히 올해는 대통령과 행정부, 보수세력, 그리고 사법부까지 전교조 죽이기에 가세하면서 전교조가 다시 고난의 길을 걸어가야 할 판이다.

함께 근무하던 동갑내기가 지난해 명예퇴직하였다. 변화된 아이들과 코드를 맞추기 버겁고, 후배들에게 교단에 들어올 자리를 만들어 주기 위해서이다.

나도 내가 할 수 있는지 검토하다가 포기했다. 교사 경력 중 4년 6개월이 통째로 빠지다 보니 경력에서 밀렸기 때문이다. 전교조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해직된 교사들은 복직 이후 거액을 모금하여 소송을 제기하였지만, 교육계의 보수 세력에 포위된 민주정부에서도 전교조의 합법화와 해직교사의 민주화운동 유공자 지정은 받았지만 원상 회복을 위한 조치는 이뤄지지 않았다.

경력도 인정받지 못했고, 해직 기간의 급여도 받지 못했다. 생활고에 시달린 해직교사들은 지급받은 퇴직금을 써버리고, 복직 후에도 해직기간의 급여를 받지 못해 불안한 노후을 맞아야 한다. 긴 해직의 고통을 겪으며 가정이 파탄 난 경우도 있고 병을 얻어 이 세상을 등진 해직교사도 전남에서만 4명이나 된다. 안타까운 것은 후배들의 활동을 외면하지 못하고, 함께 참여했던 원로 선배의 사정이다. 당시 50대의 원로교사로서 교단의 존경을 받은 분들이 해직의 대열에 함께 선 바람에 자녀 교육 등에 어려움을 겪었다. 가만히 있었더라면 거의 승진할 수 있었던 분들이다.

정부나 보수세력은 해직교사들이 4년 6개월 동안 그냥 놀았던 것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해직교사들은 그 기간에 현직 교사들이 필요한 교수 학습 자료를 만들었고, 학생들과 함께하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노래와 놀이, 영상 등 미치지 않은 영역이 없을 정도였다. 지금도 의미 있게 생각하는 것 중의 하나는 우리 정서가 베여 있는 문구류와 티셔츠, 옷과 모자를 만들었던 일이다. 생존을 위한 수익 사업 차원에서 개발한 것이었지만 외국의 캐릭터가 판을 치는 아이들의 문구류에 우리 겨레의 문화와 정서를 담으려 했다. 근무기간 이상의 활약을 한 해직 교사의 경력은 당연히 인정받을 가치가 있다.

참으로 안타까운 것은 보수세력의 콘크리트 같은 의식이다. 사회주의 붕괴와 북한 정권의 세습화 이후 북한을 추종하는 세력은 거의 없다. 그런데도 북한과 화해를 주장한다고 하여 종북으로 낙인찍으며 전교조를 반체제 집단으로 몰아간 것이다. 누구나 참여하는 노동조합의 수없이 많은 소모임 일부에서 논의한 내용을 침소봉대하여 마치 전교조가 친북, 종북 성향의 단체인 것처럼 학부모와 사회에 왜곡함으로써 전교조에 대한 부정적 의식을 의도적으로 확산하고 있으니 개탄할 일이다.

사회가 건강해지려면 소금의 구실을 하는 비판 세력이 필요하다. 조선왕조가 무려 500년을 존속할 수 있었던 것은 비판 세력을 용인했기 때문이다. 당시의 유교 지식인들은 왕조사회였음에도 자기주장을 당당하게 하였고, 왕은 이를 경청할 줄 알았다. 박정희 정권 초반에 한일회담을 추진하면서 대학생의 반발이 심하자 당시의 실력자 김종필이 대학에 가서 토론을 한 바 있다. 교육 문제에 대한 전문적 집단이라고 하는 교사 조직을 파괴하여 무엇을 얻고자 하는지 궁금할 뿐이다.

일선 교사의 땀과 후원, 해직과 온갖 징계도 감수하면서 만들어 온 전교조를 흔들려고 한다면 우리는 또다시 싸울 수밖에 없다. 아이들과 선생님, 학부모가 행복한 교육을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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