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준철
순천효산고 교사,
시인
제자들에게 써준 생일시를 모아 첫 시집을 낸 뒤에 내 이름 앞에는 자연스럽게 ‘교사, 시인’이란 별칭이 붙었다. 29년의 교직생활을 마감하면서 대강 헤아려보니 약 900명에게 생일시를 써주었다. 900명은 내가 담임을 맡았던 학생의 숫자와 비슷하다. 그동안 담임이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생일시를 써주지 못한 것이 미안해 작년에는 원하는 학생들에게는 모두 생일시를 써주었다.

29년 전, 처음 학교에 부임했을 때는 학교에 남학생들만 있었다. 건실하고 나름대로 열심히 사는 학생도 많았지만 공부에 취미도 없고 미래에 대한 계획 같은 것은 아예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는 아이들도 많았다.

그들을 대표할만한 정서는 무기력이었다. 무엇보다도 자기 삶에 대한 애착이 없었다. 초임교사의 열정만으로는 역부족이었다. 생일시를 써주게 된 것은 그런 한계를 조금이라도 극복하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아이들의 삶을 담아서 생일시를 썼기 때문에 생일시의 주인공은 그들 자신이었다. 그 생일시를 읽고 자기도 삶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는 경험을 하게 해주고 싶었다.

지금은 그때에 비해 학교가 많이 달라졌고 나름대로 당찬 자신만의 꿈을 키워가는 아이들도 많다. 작년 마지막 생일시의 주인공이었던 은주가 중학교 때부터 키워온 꿈은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되는 것이었다.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내년에 대학 뷰티과에 진학할 예정이다. 뷰티과라는 말을 듣는 순간 생일시 제목이 정해졌다. 겨울에 태어났지만 봄을 유난히 좋아하는 은주는 출석을 부를 때마다 나와 눈을 맞추기를 좋아한다. 봄빛이 가득한 은주의 눈 속을 바라보는 행복은 내가 교사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은주의 꿈이 꼭 이루어지길 바란다. 다음은 은주의 생일날 써준 시다. 제목은 ‘아름다움에 대하여’다.  

“기억나니?
마음의 담임으로 인연을 맺은 뒤
맨 처음 너희들에게 보낸 미션이
가장 좋아하는 한 글자로 된 단어를
말해보라는 것이었지.

넌 봄이라고 했구나
봄이 오면 마음이 설렌다고 했지
나는 너의 봄이 되어주고 싶다고
너를 설레게 하고 화사하게 해주는
수호천사가 되고 싶다고 했지.

그런 다음
너무 과한 욕심이겠지?
하고 넌지시 수작을 걸었는데
저의 봄이 되어주세요!
욕심 더더 내주셔도 돼요!

은주야
수업시간 네 이름을 부를 때마다
너의 봄빛 가득한 눈 속을 들여다보며
사람의 눈 속이 참 아름답다는
그런 생각을 했더란다

넌 학교를 졸업하면
뷰티과에 진학할 거라고 했는데
어떤 아름다움이 진정한 아름다움인지
혹시라도 궁금해지거든
거울 앞에서 너의 눈 속을 들여다 보거라.

그럼 알게 될 거야
아름다움은 세상 밖이 아닌
바로 네 안에 있다는 걸 말이지
그리고 너로 인해
내가 얼마나 행복했을 거라는 것도.”


삶은 사는 만큼 의미가 있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29년의 교직 생활도 내가 살아내고 실천한 만큼 의미와 즐거움이 있었다. 나는 내 행복을 위해 많은 돈을 지불하지 않는 편이다. 공해를 유발하거나 남의 고통을 전제로 하지도 않는다. 차가 없으니 가까운 곳은 걷고, 조금 먼 곳은 시내버스를 이용하여 이동한 뒤에 다시 걷는다. 걷고 노래하고 책을 읽고 시를 쓰는 것이 내 취미의 영역이다. 요즘은 사진 찍는 취미가 하나 더 생겼지만 전문적으로 하지는 않는다. 골프나 바다낚시 같은 것은 아예 생각해본 적이 없다. 하늘이 무상으로 내려 주신 것을 맘껏 누리며 하염없이 걷는 것 하나만으로도 가슴이 벅찰 만큼 행복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나는 왜 자꾸만 나의 행복이 미안해지는 걸까?"

그렇다고 마음이 많이 불편한 것은 아니다. 사실은 그 불편하지 않음이 나를 불편하게 할 때도 있지만 말이다. 어쨌거나 나는 나의 행복에 대한 변명을 늘어놓지 않아도 좋을 만큼만 세상이 바뀌어졌으면 좋겠다. 퇴임하면 그 일을 해보고도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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