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토요일 새벽 순천만·여자만을 걷는 사람들


 
새벽은 고요한 명상의 시간
새벽은 삼라만상이 잠든 하루 중 가장 고요한 시간이다. 사물은 정지해 있고, 기온은 영점이 된 부동(不動)의 시간이다. 먼동이 트는 아침이 설날이라면 새벽은 동지에 해당하는 시간이다. 어둠의 끝이자 밝음의 시작점이다. 명암과 흑백이 혼재하나 명과 백의 기운이 힘을 얻는 시간이기도 하다. 낮이 이성과 소란, 산문의 시간이라면 해거름과 새벽은 명상과 침묵, 시의 시간이다. 밤과 아침 사이, 새벽은 혼탁과 티끌이 맑게 가라앉아 성스러운 때다.

2014년부터 시작된 새벽걷기
새벽걷기는 2014년 6월 28일, 박경숙과 김은경에 의해 시작되었다. 이정우가 동조하고 허종이 가세하였으며 김선일, 문수현, 이종관, 이서호 등 몇 분이 동참하였다. 매주 토요일, 여름철엔 4시30분, 겨울철엔 5시, 연향3지구 불 꺼진 아파트 상가 앞에서 만난다. 적게는 2명(이정우 혼자 한 적도 한 번 있다) 많게는 10명 정도가 주로 순천만과 여자만을 걷고 가끔 순천·여수·광양의 가까운 산에 오른다.

순천만과 여자만, 순천·여수·광양
그간 여수 화양면 이천, 소라면 달천, 사곡, 순천 해룡면 와온, 용산전망대, 순천만 둑길, 별량면 화포, 거차, 구룡포, 용수동-삼거동 바람재, 선암사, 여수 호랑산, 광양 구봉산 등을 1번 또는 여러 번 걸었다. 한 번에 얼추 2시간 반 남짓, 10㎞ 안팎을 걷는데 13㎞를 걸은 적도 한 번 있다. 지켜진 적은 많지 않지만 8시에는 파하려 한다. 걷기를 마치고 따끈한 콩나물국밥 한 그릇을 먹고 헤어질 때도 있다.

왜 하필 토요일 새벽에 걷는가
새벽잠이 많은 사람이, 다른 시간도 많은데 왜 하필 새벽을 걷느냐고 묻는 사람들이 가끔 있다. 미리 정리해 두지 않아서 우물쭈물 대답을 못한 적이 몇 번 있어 이참에 몰아서 답변을 드린다. 왜 새벽을 걷는가?

새벽걷기는 건강과 희열을 선사
건강에 가장 좋은 운동은 걷기라는 데 많은 사람이 동의하지만 평일 매일 30분~1시간을 걷는 사람은 흔치 않다. 매일 못 걸으면 1주일에 몰아서 걷는 것도 괜찮다고 의사는 말했다. 그래서 토요일에, 이왕이면 상쾌함을 느끼고 여명의 떨리는 희열이 있는 새벽이 좋겠다는 생각이다. 그리하면 토요일 낮과 일요일을 가족과 보낼 수 있다. 새벽 걷기는 건강과 떨림을 선사한다.

새벽의 자연이 던지는 화두와 명상
새벽의 도심을 걷는 것도 좋지만 새벽의 자연을 걷는 것은 더 좋다. 새벽의 자연은 우리의 잠자는 감각, 정신과 영혼에 언어가 도달할 수 없는 복락을 준다. 바다, 갯벌, 안개, 달, 해, 섬, 산, 나무, 풀과 꽃은 우리가 자연의 미미한 일부라는 소박한 진리를 일깨우며 뭇 생명과 지구, 일월성신과 은하계, 우주, 나와 세상에 대해 명상하게 한다. 명과 암은 단절되지 않고 이어져 있으며, 찰라가 억겁이 아니겠냐는 화두를 던지기도 한다. 아니 자연이 던진다기보다 나 스스로 묵상하게 된다.

소박하고 인간적인 사람들과의 만남
새벽걷기의 묘미에서 뺄 수 없는 것은, 좋은 사람들과의 만남이다. 소박·소탈하고 지극히 인간적인 사람들과 함께 길을 걷는 일은 즐거운 일이다. 삶의 무게를 이고 지고 같은 지역에서 같은 시대를 사는 사람들이 1주일에 한번 도반이 되어 희로애락을 나누는 일은 흔치 않은 기쁨이다. 비록 잠든 자연을 놀라게 한다고 손전등을 금지하고 침묵을 강요하는 규율부장(박 동무)이 있어도 우리 길동무들의 유쾌한 대화가 중단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언젠가는 도반들의 재담과 유머에 새들이 놀라 홰를 치고 날아간 적도 있었다.

 

지역 사회를 알면 애정이 생긴다
‘오래 보고 자세히 보아야 아름답다’고 노래한 시는 절창이다. 내 주변과 우리 지역을 자세히 알게 되면 저절로 좋아하게 되고, 제대로 사랑하게 된다. 같은 길이라도 차를 타고 갈 때와 자전거로 갈 때의 느낌이 다르다. 하물며 걸어갈 때의 느낌이랴! 철학자 박이문은 목적지만을 향해 가는 ‘도로’와 과정을 즐기는 ‘길’을 구분한 적이 있는데, 우리는 서울이 아닌 우리 지역의 ‘길’을 걷는다. 우리는 목적 없이, 우리 지역 곳곳을 느리게 걸으며 느끼고 즐긴다. 기웃거리고 어슬렁거리는 새벽걷기를 하면 우리 지역을 알게 되고, 사랑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관광객들에게 순천만 새벽걷기를
우리 걷기모임의 구상인데, 여건이 되면 순천만 관광객들에게 ‘새벽 순천만 걷기 프로그램’을 제공하려고 한다. 매주 토요일 새벽 5시에 순천만 주차장으로 오시면 우리가 새벽 순천만의 이모저모를 안내하며 함께 걸을 생각이다. 갈대밭을 지나 용산전망대에 올라갔다가 저녁에 술과 고기로 배를 채우고 하룻밤 자고 가는 것도 좋지만, 평범하다. 새벽 순천만을 걸어 본 일은 평생의 추억이 될 것이다.

언제나 누구나 함께 하는 새벽걷기
새벽걷기 문은 당연히 활짝 열려있다. 누구나 오면 된다. 왔다가 가도 된다. 자유롭고 내적자발성이 있어야 일이 재미있다. 사람들은 집착과 강요를 별로 안 좋아한다. 그래서 배려를 무심(無心)으로 오해할 여지가 있다는 걸 알면서도, 오는 사람 막지 않고 가는 사람 잡지 않으려 한다. 일단 뇌쇄적인 새벽잠의 유혹을 한 번만 물리치고 새벽에 몸을 일으키시라. 잠시 서먹서먹할지 몰라도 곧 편안한 분위기에 녹아들 것이다. 그리고 곧장 새벽의 자연에서 놀라운 환희와 떨림을 맛보게 될 것이다. 우리는 매주 토요일, 새해 첫날의 해돋이를 본다. 몇 번 걷다보면 “색깔에도 결이 있고, 바람에도 결이 있고, 시간에도 결이 있다”는 김 동무의 말뜻을 단번에 알아채게 될 것이다.

 

한 주를 살아갈 힘을 얻는다
우리는 이번 주 토요일 새벽에도 세상이 좀 살만해지기를, 우리 사회가 아침을 맞이하기를 기원하면서 어둠 속으로 나설 것이다. 그러다보면 동쪽하늘에 먼동이 트고 어느덧 수줍은 해가 붉은 얼굴을 내밀 것이다. 자연 속에서 세상이 어둠에서 밝음으로 이동하는 것을 보는 기쁨만으로 우리는 다시 한 주를 살아갈 힘을 얻는다.
 

저작권자 © 순천광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