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선식
순천여자중학교 교사
나는 중학교에서 사회를 가르치는 교사다. 중학교 사회교과서에 나온 헌법 1조 1항에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고 쓰여 있다. 나 또한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고 가르쳐왔다. 민주공화국의 정치적인 의미는 국민이 대표를 선출하고 법에 따라 통치되는 나라를 말한다. 사회적인 의미는 국민이 권력을 통제할 수 있고, 약자들을 비롯한 다른 사람들의 자유와 권리가 존중되는 사회를 말한다.

그런데 과연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인가?’ 학생들에게 정치적인 의미와 사회적인 의미를 설명하고 ‘우리나라는 민주공화국인가?’ 질문을 하면 부정적인 반응이 많다. 주변의 일반인도 ‘그렇다’는 응답보다 ‘아니다’는 응답이 많다. 왜일까?

이 땅의 노동자들은 국민인가? 서울의 국가인권위 건물 옥상 전광판에서, 오늘도 새우잠을 자는 노동자들이 있다. 기아차 사내하청 노동자 최정명과 한규협이다. 기아자동차의 하청노동자 정규직화를 요구하며 전광판에 오른 지 오늘(1.6)로 210일째가 된다. 지난 해 9월, 서울중앙지방법원 민사합의 41부는 기아차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정규직으로 채용되어야 한다고 판결했다. 그러나 회사는 법원의 판결에 ‘모르쇠’다. 오히려 순차적인 정규직 신규채용을 통하여 일부 경력만 인정하겠다고 한다. 법원의 판결을 지키지 않는 회사와 대표는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았다. 결국 힘없는 노동자들은 목숨을 걸 수밖에 없다. 그래서 어두운 새벽에 옥상의 좁다란 전광판에 올라 새처럼 둥지를 틀었다. 지금도 그 조그마한 둥지에서 칼바람을 맞으며 동상 걸린 발을 동동거리며 찬밥으로 허기를 때우고 있다. 법원의 판결을 지키라고 목숨을 걸어야 하는 나라! 과연 민주공화국일까?

기아차 노동자만이 아니다. 서울의 동아면세점 앞, 여의도 새누리당사 앞, 삼표시멘트(옛 동양시멘트) 회장 집 앞, 하이텍 RCD 코리아 공장의 철탑 위, 구미의 아사히글라스 공장 앞 등에서 오늘도 수많은 노동자들이 칼바람을 맞으며 새우잠을 자고 있다. 힘없는 약자인 노동자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노동법은 유명무실하다. 노동법에 보장된 노동자의 권리는 손배, 가압류, 업무방해 등으로 무력화되고 있다. 대한민국은 ‘힘 있는 자들’에게는 민주공화국일지 몰라도 ‘힘 없는 자’들에게는 민주공화국이 아니다.

대한민국의 법치와 정치는 힘 있는 자들에 의해 농단되고 있다. ‘세월호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은 국민 대다수의 지지에도 불구하고 지켜지지 않고 있다. 한국사 국정화 반대 교사 선언자들은 처벌을 요구하지만 한국사 국정화 찬성 교사 선언자들에 대한 처벌은 말이 없다. 전교조의 연가투쟁은 불법이지만 교총의 연가투쟁은 불법이 아니다. 경찰의 직격 물대포에 쓰러진 백남기 농민에 대한 폭력은 공무집행이지만 노동자, 농민의 생존권 요구 집회는 불법집회이다. 법원의 결정을 무시하는 대기업 회장은 묵인하지만 민중의 집회를 주도한 민주노총 위원장은 구속하는 나라이다. 과연 대한민국의 주인인 ‘국민’은 누구인가? ‘힘 없는 자’도 국민인가?

2016년 병신년! 새해가 밝았다. 2016년, 우리는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의 ‘민주시민’으로 살 수 있을 것인가? ‘주인’으로서의 권리를 누리며 살 것인가? 아니면 심부름꾼들에게 휘둘리며 살 것인가? ‘주인’으로 살기 위해서는 어찌해야 할 것인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인가?’ 새해 벽두에 독자들에게 물음을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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