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성호의 ‘식민지 유산 ’의 한국현대사<13>

▲ 강성호
순천YMCA 간사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는 ‘반상회’는 식민지 시기의 ‘애국반’에 기원을 두고 있다. 기본적으로 애국반은 전시체제기(1937-45) 총동원체제의 구축과 관련을 가지고 있다. 왜냐하면, 1937년 국민정신총동원운동이 전개되면서 애국반이 조직되었기 때문이다. 애국반은 식민지 조선인들의 일상을 통제하고 전쟁에 필요한 인적․물적 동원을 원활히 하기 위한 목적을 가졌다. 여기에서 ‘애국(愛國)’이라는 건 황국신민이 되는 것을 의미한다. 일제는 애국반이 내선일체를 궁극의 목표로 삼는 조직이라는 점을 강조하였다.

애국반의 운영은 ‘사적인 영역에 정치적 요구를 부과함으로써 사회를 정치화’시켜 나가는 일련의 과정이었다. 애국반은 황민화운동으로부터 시작해서 생활개선운동, 근로동원, 배급, 방공 등의 모든 영역에 걸쳐 총동원기구의 말단 조직으로 운영되었다. 심지어 총독부는 애국반이 없었다면 전쟁을 수행할 수 없었을 것이라는 평가를 내릴 정도였다.
해방 이후 애국반의 운영은 사실상 거의 중단되었다. 그러나 1948년 정부수립 이후 국민회 주도의 국민운동을 통해 애국반은 부활하게 되었다. 흥미로운 점은 식민지 시기 애국반은 쌀을 비롯한 생활필수품의 배급을 담당했다는 데 있다. 일상의 물적 기반을 쥐고 있었기 때문에 반장들은 반원들을 통제할 수 있는 권력을 가질 수 있었다. 그런데 미군정 시기에 식량 문제가 발발하자 주민들은 예전의 ‘애국반 배급제’를 요구하였다. 식량 문제를 해결하고자 결국은 애국반을 통한 배급제가 일시적으로 부활된 적이 있었다.

정부수립 이후 이승만 정권이 지원하는 관변단체들은 ‘국민운동’이라는 이름으로 일상의 규율을 시도하였다. 이는 당시의 행정기구가 견고하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하나 의회를 장악하지 못한 이승만이 의회 밖에서 자신의 지배력을 확장하려는 의도와 맞물린 측면도 있다. 이러한 역할을 수행한 것으로 가장 대표적인 단체가 ‘국민회’였다.

일제시기에 구축되었던 애국반은 미군정기에 쌀 배급 관리의 수단으로 재활용되기 시작되었다. 정부수립 이후 애국반은 이승만의 사조직인 ‘국민회’에 의해 국민반으로 개칭되었다. 이때의 국민반은 ‘사조직에게 임의로 대여된 국가기관’의 양상이었다. 국민회는 반공운동, 기부금 징수, 선거활동 등을 국민반을 활용하여 전개할 수 있었다. 이승만은 정치적 위기에 직면하면 대중단체들을 동원하여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켰는데. 국민회는 민의라는 이름으로 대중을 동원하여 이승만의 권력 강화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다.

한국전쟁의 발발은 식민지 유산을 재작동하게 하는 기폭제가 되었다. 정부수립 이후 이승만 정권은 국민반의 이용을 상당부분 대국민 통제와 정치적 동원에 할애하였다. 그러나 전쟁의 상황은 국민반의 작동방식과 목표를 새롭게 변화시켰다. 즉, 이승만 정권은 전쟁수행을 위해 총동원체제의 구축을 우선시했는데. 이는 국민반의 운영을 식민지 시기 애국반과 유사하게 만들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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