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상준
소설가, 논설위원장
크리스마스에 대한 기대감이 사라진 남녀 평균 연령이 31.6세라는 데이터도 그렇지만 남자보다 여자가 더 빨리 ‘크리스마스 감흥’을 느끼지 않는다더라, 하는 이야기를 했을 때,

“나는 지금도 재미없는데.” 이제 곧 27세가 되는 내 딸, ‘청춘’은 그렇게 대답했다.

“크리스마스이브라고 해서 놀러 갔다 왔잖아, 넌.”

“그건, 취업 기념이었지.”

“어쨌거나.”

“놀러가서도 재미 별로였지만, 더 재미없게 만든 건 뭔지 알아, 아빠.”

“뭔데?”

“어디에서도 캐롤송을 듣지 못했다는 거야.”

“엊그제 마트 가서도 듣지 못했던 것 같네.”
 
“저작권법 위반이래. 백화점이나 대형마트, 몇 평 이상의 장소에서는 저작료 내지 않으면 걸린대.”

“아하. 캐롤송이 사라진 건, 크리스마스 즈음해서 캐롤송이 울려 퍼지는 거리에 나다니지 않는 아빠의 행동반경 탓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구나.”

“거리마다 캐롤송이 울려 퍼지고 애들이 거리로 뛰쳐나와야 커피숖이건 영화관이건, 술집이건, 연동(연향동을 청춘들은 그렇게 부른다) 어디건 매출이 오르지 않겠어.”

“그렇지.”

지적재산권 보호 명목으로 후진국으로의 경제력 이동을 막으려는 선진자본의 문화적 통제라는 생각이 들어 씁쓸해졌다. ‘청춘’들이 즐길 수 있는 어느 계기의 순간마저 자본에 잠식되어 있다는 건 너무 나간,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여전히 날뛰고 있는 신자유주의의 흉상이었다.

“그래도 내 딸, ‘청춘’아! 기죽지 말고, 크리스마스 즈음엔, 캐롤송 다운 받아 듣기도 해라. 그래야, 청춘이다, 알간.” 

‘청춘’이 먼저 끄집어냈다. ‘사람이 미래다’고 홍보하는, 신입사원에게까지 희망퇴직을 받았다는 두산그룹 이야기였다.

“그러게, 그게 한국 기업의 민낯이지.”

“근데, 만약, 아빠와 내가 그런 경우에 처했다면, 어떻게 해야 돼?”

“당근, 아빠가 나가야지.”

“아니지. 나는 아직 젊잖아.”

“얀마, 아빠가 ‘청춘’ 기를 어떻게 꺾냐?”

“….”

‘청춘’은 이 대목에서 침묵했다. 그게 속내일 터였다. ‘그래, 아빠가 나간다. 아무렴, 네 미래까지 당겨다 쓴, 아파트 융자금에 담보된 아빠의 삶마저 너에게 물려 줄 수는 없잖니.’

“아니, 그렇게 쉬운 해고를 하고 있으면서, 또 무슨 노동법 개정을 하라고 난리야.”

“삼권분립의 망쪼다.”

나는 딸, ‘청춘’에게 그나마 품위 있게 행정부를 나무라는 국회의장의 점잖음을 차용함으로써 좀 더 지악스런 표현을 삼갔다. ‘청춘’ 또한 모르지 않았다. 그게 기죽지 않으려는 아빠의 안간힘임을.      

“근데, 아빠. 3개월 인턴 뒤에 뽑아줄까?”

지하 주차장으로 들어서, 후진으로 주차를 하고 있을 때였다.

“그럼, 그∼럼.” 나는 일부러 큰소리로 화답했다.

“아빠―”

딸아이가 큰 소리로 외쳐대지 않아도 내 차가 옆 차의 빽미러를 치고 들어가는 걸 감지했다.

“역시, 아빠는 엄마보다 운전을 못 해.”

“글 안 커든. 엄마는 주차를 넘 못해요.” 빽미러를 살짝 스쳤다. 내려서 보았다. 흠집도 없었다.

“어쩌지.”

“뭘 어째? 거기 핸드폰 번호 있잖아. 연락해야지.”

번호를 눌렀다. 받지 않았다.

“안 받는데.”

“문자 남겨.”

‘청춘’이 ‘뺑소니야, 그렇게 하지 않으면’ 하는 말은 내뱉지 않았다. 문자를 보냈다. 차 주인이 곧장 답을 줬다. ‘빽미러 깨지지 않았으면 괜찮아요. 이상 있으면 다음에 연락드릴께요. 1203호 아저씨군요.’

“아빠를 아는 사람인가 봐.”

“누굴까?”

“가만. 36조 0000번이면, 알 것도 같은데?”

“됐다, 올라가자.”

“그 스튜디오 괜찮은 덴데, 뽑아주면 좋겠다, 그치, 아빠.”

엘리베이터 안에서 ‘청춘’이 말을 건넸다. 앞날이 두려운가 보았다. ‘청춘’은 인턴 3개월 동안 월 70만 원 받고 일하게 되었다. 사진 전공인 ‘청춘’은 그 바닥의 취업이 얼마나 어렵고 또한 살아남기 위해 어느만큼 몸부림해야 하는가를 잘 알고 있었다. 우리집에서 유일하게 서울로 취직해 가는 ‘청춘’을 보면서, 나는 말했다.

“내 딸, ‘청춘’. 기죽지 말어. 별 거 아냐. 빽미러 치고 문자 넣었듯, 그러면 돼.”

‘젊어선 사서 고생한다잖아’라고 말하려다, 거뒀다. ‘아프니까, 청춘’인 이 땅의 청춘들이 새해엔 제발 아파하지 않길 바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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