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째 이어지는 어느 모임의 송년회에서 각자 어렸을 때 사진을 공유해 보자는 제안이 나왔다. 덕분에 몇십년 만에 오래된 사진첩을 뒤져 초등학교 5학년 시절 우리 반 단체 사진 한 장을 골라내었다. 어릴 적 이사를 여러 번 가는 바람에 초등학교를 세 군데나 옮겨 다녔는데, 마지막으로 5학년 때 전학을 간 학교는 하와이에 있는 어느 초등학교였다. 한국과 미국의 학기가 달라 5학년 1학기를 서울에서 마치고 그곳으로 가서 9월부터 다시 5학년을 다니게 되어 5학년을 3학기 다니게 되었고, 서울에 돌아오면 한 학년 늦어질 것을 염려해 6학년을 건너뛰고 7학년으로 월반을 했다. 초등학교를 세 군데나 다녔지만, 결국 나에게 6학년이란 시기는 없었고, 결과적으로 초등학교 졸업이란 사건도 없었다.

세월의 먼지를 고스란히 뒤집어쓰고 누렇게 변한 묵직한 사진첩을 한 장 한 장 넘기며, 난 시간 여행을 시작했다.

마치 시간이 정지되어 있었던 것처럼, 기억의 필름을 어느 한 구간 잘라내고 매끈하게 이은 것처럼, 조금도 어색하거나 생소하지 않게 그 시절의 느낌과 기억으로 곧바로 이어진다.

그렇다. 시간은 자연스럽게 흘러갈 뿐 아니라 살아 있어서 어느 한 시점을 불러 낼 수도, 나를 어느 한 시점으로 불러들이기도 한다. 수많은 이미지와 느낌들로 버무려진 그 시절의 얼굴들과 기억들이, 어느새 문틈으로 스며든 매캐한 잿빛 연기처럼 그동안 잊고 있었던 시간과 공간에 대한 기억을 깨운다. 다들 어떻게 변했을까.

그 시절 난 환경이 바뀔 때 마다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말이 전혀 안 통하는 환경에 갑자기 놓여 졌을 때의 당혹감도 그랬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 와서도 마찬가지였다. 그 때만 해도 학교에는 외국에서 살다 온 아이들이 거의 없어서 아이들의 호기심의 대상이 되기 일쑤였고, 어떤 선생님은 나에게 권투선수 알리에게 보내는 팬레터를 쓰도록 주문하기도 했다. 아직 어린 나이였지만, 이곳저곳 학교를 옮겨 다니며 변하는 환경에 적응하고 살아남기 위한 나만의 노하우를 발견한 것도 그 시절인 듯하다. 그 노하우란 어떤 일이든 지나간 일은 빨리 잊어버리기였다. 그래야만 새로운 것들을 받아들이기 쉽고 편하다는 것을 일찍이 터득한 셈이다. 그 후 빨리 잊어버리기는 습관처럼 되었고, 본의 아니게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어떤 변화든 쉽게 적응할 수 있다는 배짱이 생기게 된것 같다. 덕분에 긴 중년의 시기를 보내고 있는 요즘, 기억하고 있어야 할 법한 일들도 모조리 기억이 나지 않는 부작용이 종종 나타나긴 하지만, 변화를 즐기는 배짱으로 느긋이 삶의 모퉁이를 돌고 있다.

 

고독한 자유

어느 날 세수하다 갑자기 지독한 치통이 왔다. 잇몸에 번개가 치는듯하다고 할까, 전기에 감전된듯하다고 할까 극심한 통증이 수초에서 수분 간 지속되다 사라졌다. 이런 통증이 하루에도 수차례씩 반복되길 몇일, 신경외과를 찾아 여러 검사 끝에 나온 의사의 진단과 병명은 3차신경통이었다. 뇌신경 가운데 얼굴로 내려오는 신경을 3차신경이라 하는데, 그중 잇몸 쪽으로 내려오는 신경에 문제가 생긴 거란다. 그런데 답답한 것은 딱히 원인도 모르고, 치료 방법도 마땅치 않다는 것이다. 3차신경통은 완치 개념이 없는 난치병이지만, 대신 무통기간이라는 것이 있어 며칠, 몇개월 혹은 몇년간 통증 없는 기간이 있다는 위로 아닌 위로를 하며, 항경련제를 처방해주고 며칠 기다려 보란다. 진통제가 아닌 항경련제라는 말에 의아한 표정을 짓자, 워낙 통증의 강도가 높아 일반 진통제로는 효과가 없어서 항경련제를 쓰는 것이라고 한마디 덧붙이며 넉넉하게 한달치를 처방해 주었다. 문제는 처방해 준 약을 먹어도, 안 먹어도 일상생활이 안 된다는 것이다. 항경련제를 먹으면 온 몸에 힘이 없고 몽롱해져서, 안 먹으면 극심한 통증으로 도무지 정상적인 생활이 어려운, 참으로 기막힌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그것도 어느 날 갑자기...

한 보따리 받아온 약을 먹으며 일주일쯤을 버텼는데 도무지 차도가 없다. 아무래도 항경련제는 해결 방안이 아닌 것 같아, 다른 방법을 찾아보기로 했다. 한방치료를 시작으로 기치료와 색채치료를 거쳐 인도 아유르베다, 태극권, 명상, 그림 그리기로 이어지며 생전 처음 나에 대해 배우는, 나를 알아가는, 나를 찾아가는 시간이 시작된 것이다. 몸에서 마음으로, 물질에서 정신으로 차원을 넘나들며...

고통은 그저 불편할 따름이지 나쁜 것은 아니다. 고통의 체험은 자신이 누구인지, 어떤 사람인지 알게 해 준다. 도망 갈 수도, 회피 할 수도 없는 고통, 몸으로 오는 고통에는 어떠한 도피처도 없다. 그 순간만큼은 나만이 느낄 수 있는, 온전히 나 자신이 되는 시간인 것이다. 오로지 나 혼자 감당할 수 밖에 없는 사건인 것이다. 침묵의 음성만이 들릴 뿐인 홀로서기의 사건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고통의 체험은 자유이다. 고독한 자유.

 
 

 

정인명

미국에서 전산으로 석사 과정을 마치고 귀국해
소프트웨어 관련 일을 하다가 지금은 대학에 출강 중이다.
사진과 음식에 관심이 많고, 여행을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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