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라면을 먹을 때』/ 하세가와 요시우미 글, 그림 / 장지현 옮김

▲ 심명선
어린이책시민연대 전 대표
그림책은 간결한 시적 언어와 글이 표현해내지 못하는 부분을 그림으로 전한다. 글과 그림의 조화는 책을 읽는 이가 딱히 뭐라고 설명하긴 어렵지만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힘을 갖는다. 그래서일까? 그림책을 소개하다 보면 구구절절한 설명이 오히려 감동을 가로막거나 제한하는 건 아닐까 싶기도 하다. 말로 풀어내는 이야기가 정보와 지식을 전달할 수 있을 뿐 마음의 울림까지 담아낼 수 없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내가 라면을 먹을 때, 옆에서 방울이는 하품을 한다. 옆에서 방울이가 하품을 할 때, 이웃집 미미는 텔레비전 채널을 돌린다. 이웃집 미미가 텔레비전 채널을 돌릴 때…”

그때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 친구와 수다 떨고 있거나, 인터넷 서핑을 위해 컴퓨터를 켜고 있거나, 자동차를 운전해 집으로 가고 있거나, 회사에서 보낸 해고 문자를 읽고 있거나, 살던 곳에서 쫓겨나 주저앉아 울고 있거나, 누군가 억울한 죽음을 애도하는 분향소의 촛불을 켜고 있거나… 텔레비전을 보고, 자동차를 운전하는 일상의 평범한 일들과 해고통보 문자를 읽는 노동자, 집과 마을에서 쫓겨난 사람과 사건은 옆집에서, 이웃 마을에서, 이웃 마을의 이웃 마을에서, 이웃나라의 건너 나라에서 벌어지는 오늘을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내가 라면을 먹을 때처럼 너무나 일상적이라서 셀 수 없을 만큼이나 많이 벌어지는 순간이다.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모르는 일’이다. 눈에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고 누구도 말하지 않는다면 그저 모르는 이야기일 뿐. 그리고 모르는 일은 놀랍고 어이없게도 세상에 ‘없는 일’이 돼버린다. 말과 글로 전달되지 않는 일, 기억되지 않는 일, 누구도 아파하지 않는 일은 ‘없는 일’이 된다.

지금 눈에 보이는 평화로운 풍경 뒤 어느 곳, 누군가의 고통과 불평등을 생각하며 사는 일. 평화로워 보이지만 서로 연결돼 있는 이 세계에서 그것이 결코 온전한 평화가 아니라는 걸 ‘느끼는 것’은 꽤 어려운 과정이다. 그러나 모른다는 변명은 이유가 되지 못한다. 눈앞에 보이지 않지만, 속속들이 들리지 않지만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관심 갖는 것은 살아 있는 사람의 몫이다. 어쩌면 당연해서 어려운 이런 얘기를 담담하게 풀어낸 그림책이 『내가 라면을 먹을 때』이다.
 

 
                  
                    ......

그 이웃나라의 이웃나라 남자아이는 소를 몬다.
그 이웃나라의 이웃나라 남자아이가 소를 몰 때 그 맞은편 나라 여자아이는 빵을 판다.
그 맞은편 나라 여자아이가 빵을 팔 때
그 맞은편 나라의 산 너머 나라 남자아이는 쓰러져 있다.

바람이 분다.

바람이 분다. 그때,

바람이 불었다.

이 그림책은 내가 살고 있는 이 순간에 타인도 어떤 장소, 어떤 삶으로 존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고통 가운데 있는 지구 저편 누군가의 이야기를 구구절절하게 소개하는 것은 아니다. 그저 이웃마을 여자아이가 달걀을 깰 때, 이웃나라 남자아이는 자전거를 타고, 이웃나라의 이웃나라의 여자아이는 아기를 보는 다른 곳, 다른 사람의 모습이 등장할 뿐이다. 구체적 사건과 인물의 사연이 마음을 울리는 글이 될 수 있지만, 자칫 마음과 생각의 깊이를 더하기보다 안타까운 눈물만 남길 때가 있다.

타인의 고통에 공감의 마음을 갖는 것은 더 없이 중요하지만 나와 전혀 다른 삶의 모습은 때때로 ‘안됐다’ ‘나는 다행이야’로 빠지곤 한다. 연민의 마음은 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난 다행이야’로 끝날 때 다른 처지, 다른 대우, 다른 삶... 불평등과 비인간적인 삶도 존재할 수 있는 것이 되기도 한다. 존재하지만 잊혀지고 모르는 일, 그리고 마침내 없는 일이 되는 것이다.간혹 세상의 고통을 알려줘야 한다는 의지만 담은 이야기책에는 고통 받는 세계의 아동이 등장하고, 후원과 편지 등의 생활 속 실천까지 제시된다. 고통에 공감하고 실천하는 것이 대체 무엇이 문제일까? 공감도 후원도 편지도 문제는 아니다. 왜 이런 고통을 받고 있는지, 질문 없는 이야기가 문제일 것이다.

『내가 라면을 먹을 때』는 격분하며 세상의 고통을 쏟아내며 보여주지 않는다. 짧은 문장의 책장을 한 장, 한 장 넘기다보면 나와 너의 연결 속에 마음이 움직이고, 고통이 느껴지고, 저절로 질문이 생겨난다. 왜 이런 고통이 존재하는가? 그리고 우리는 어떻게 문제를 해결해 가야 할 지 생각하게 된다. 책장을 넘기며 ‘공감의 이유’가 분명해진다. 내 마음에 바람이 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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