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성호의 ‘식민지 유산 ’의 한국현대사<10>

▲ 강성호
순천YMCA 간사
이제 본론이다. 식민지 유산의 핵심은 전시체제기(1937-45)에 경험한 파시즘이었음을 앞서 강조한 바 있다. 여기에서 말하는 파시즘은 거대한 집단성을 맹목적으로 추종하면서 ‘거대한 개인(영도자)’을 비판적 성찰 없이 받아들이게 하는 근대적 사고방식을 의미한다.

정부 수립 이후 이승만이 제창한 일민주의는 식민지 조선이 경험한 파시즘의 재현이었다. 일민주의는 해방 후 대중의 광범위한 지지를 받고 있던 사회주의에 대항하기 위해 제시되었다. 반공주의는 신탁통치 파동을 계기로 우익세력의 지배이데올로기로 급부상했지만 사회주의만큼 호소력은 없었다. 한국전쟁을 통해 반공주의의 헤게모니화가 이루어지기 전까지 일민주의는 이승만 정권의 지배이데올로기로 존재했었다.

일민주의는 초기 이승만 정권의 지배 이데올로기였다. 이승만은 <일민주의 개술>이라는 조잡한 팜플릿을 통해 자신이 구상한 일민주의에 대해 설명하였다. 이승만은 <일민주의 개술>에서 “나는 일민주의를 제창한다. 이로써 신흥국가의 국시를 명시하고자 한다”고 밝히며 일민주의를 국시(國是)로 제시하였다. 그리고 이승만은 “우리는 본래 오랜 역사를 가진 단일한 민족으로서 언제나 하나요 둘이 아니다”라고 주장하며 혈연적 민족주의를 동원하였다. 이는 히틀러가 순혈의 게르만 공동체를 외친 모습과 유사하다.

▲ 혈연을 바탕으로 한 운명공동체를 강조하는 일민주의. 한국형 파시즘의 탄생이라고 할 수 있다. (출처: 김수자,『이승만의 집권 초기 권력기반 연구』, 경인문화사, 2005, 53쪽)

이승만은 일민주의를 통해 하나가 될 것을 강조하였다. 문제는 여기에 강제성이 내포되어 있다는 점이다. <일민주의 개술>에서 이승만은 일민주의를 “하나가 미처 되지 못한 바 있으면 하나를 만들어야 하고, 하나를 만드는 데에 장애가 있으면 이를 제거하여야 한다”는 의미로 설명하였다. 이는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고 하나로 환원되어야 한다는 파시즘적 정치관과 상통하는 부분이다.

우리는 <일민주의 개술>을 통해 민주주의에 대한 이승만의 생각을 알 수 있다. 이승만은 민주주의가 공산주의에 대항하기 어렵다고 여겼다. 대신 이승만은 일민주의가 공산주의에 대항하는데 탁월하다고 보았다. 이는 공산주의에 대항하는데 의회민주주의가 필요 없다고 한 파시즘의 주장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다.

 하나에 대한 강요와 민주주의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정당 문제에서 직접적으로 드러났다. <일민주의 개술>에서 이승만은 정당을 당파적 사상이 농후하여 서로 시기와 투쟁을 일삼는다고 비판한 바가 있다. 이승만은 복수정당제를 적극적으로 부인하지 않았으나 자신이 인정한 정당을 제외하고 모두 파벌로 몰아붙이며 정당정치를 배제하였다. 일민주의는 무조건적인 통합과 하나 됨만을 강조하며 토착형 파시즘의 원형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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