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형배
광양시사회복지협의회
사무처장
어릴 적, 십리 쯤 떨어진 외갓집에 외할아버지 제사를 모시러 따라다녔다. 방골재라는 길을 지나야 한다. 버스가 다니던 길이었지만, 구불구불하고 귀신이 살고 있다는 둥 방골재에 관한 무서운 이야기들이 무성했었다. 전기불도 없었던 그 시절, 어쩌다가 누나와 함께 그 길을 가야하는 경우가 있었다. 괜히 오만가지 무서운 생각이 든다. 일부러 큰 소리로 이야기해 보기도 하지만 걸음은 나도 모르게 빨라지고, 저만치 외갓집 대문이 보이면 마구 뛰어갔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같은 길. 늦은 밤이라도 어머님과 함께 오갈 때면 무서움은 싹 사라진다. 어른은 이렇듯 근거 없는 불안으로부터 구해 주는 역할을 하는 사람이 아닐까 생각한다.

전 세계가 IS테러 공포에 휩싸여 있다. 정부시설이나 공공기관이 아닌 일반 시민을 표적으로 삼아 공연장, 축구 경기장 식당, 카페 등에서 테러를 저질렀다는 사실과 테러 위협이 계속되는 것을 보면, 공포의 확산이 그들의 바람인지도 모르겠다. 끔찍한 상황 속에서도 그들의 의도에 굴복하지 말 것을 다짐하는 프랑스 국민과 지도자들의 용기가 존경스럽다. 오바마 대통령은 확실한 정보가 없다며 불안해하는 미국민들에게 평소대로 추수감사절을 즐기라고 말한다. 동시에 테러에 대한 응징과 대응을 준비해 나가고 있다. 불안과 공포로부터 자국민을 안심시키되, 철저한 대응책도 병행한다.

우리 대한민국도 IS의 테러 대상국으로 지목되었다. 우리도 테러의 공포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게 되었다. 국민의 안전을 보장하는 것은 국가의 제1 역할이다. 이 역할을 위해 만반의 준비를 하는 것은 당연하다. 미국 9․11테러 이후 2001년 테러방지법 제정안이 발의됐지만, 14년 째 통과되지 못하고 있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 때는 한나라당(현 새누리당)이 반대하고, 이명박, 박근혜 정부 때는 새정치민주연합이 반대하는 식이다. 테러방지법이 없는 나라가 OECD와 G20 회원국 중 한국, 일본, 스위스 등 4개국에 불과하다는 보도를 보면, 국민을 불안과 공포로부터 보호하기 위해서는 법률 제정이 필요하다.

여기서 안타까운 장면이 떠오른다. 박근혜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정식으로 집회신고를 하고 진행된 민중총궐기대회 참가자를 IS테러에 빗대 강력한 대응을 주문했다. 그리고 농민단체가 준비하고 있는 집회를 불허할 것이라는 경찰청장의 화답이 이어진다. 집회에 담겨 있는 목소리는 사라지고, 집회의 폭력성과 불법성만을 보는 것 같습니다. 법의 허용 범위 안에서 의사를 표현하되 불법적인 방법과 수단에 대해서는 책임을 물을 수 있는 법이 있음에도, 집회 참가자 중 일부의 일탈행위를 이유로 집회 참가자 모두를 불법으로 몰아가는 모습이다. 공포와 불안을 확대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든다. 수많은 국민이 모여 정부에 요구한 사항에 대해 어떻게 하겠다는 대답과 함께, 정당한 집회라도 폭력과 불법 행위에 대해서는 엄정한 법 집행을 선언하는 것이 옳은 순서가 아닐까 생각한다.

“행복한 국민, 행복한 한반도, 신뢰받는 모범국가” 박근혜정부의 국정 좌표이다. 우리는 지금 행복합니까?

“우리들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든지 우리 모두는 미국이라는 가정의 일원이고, 우리는 홀로 있을 때보다, 함께 할 때 더 위대한 국민”이라는 오바마 대통령의 2년 전 추수감사절 메시지가 생각난다.

공포와 불안 그리고 적대와 증오를 줄이는 것이 작게는 어른의 역할이고, 크게는 지도자의 역할이다.
공포와 적대를 줄이는 지도자, 따뜻한 지도자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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