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병섭
순천공고 역사교사
우리 국민의 역사에 대한 관심은 어제 오늘이 아니다. 공중파에서 역사 드라마가 끊일 사이가 없고, 잘 팔리는 책에 역사서가 빠지지 않는다. 이 땅의 서민은 지나간 역사에서 현재의 암울함을 반추하며 탄복하기도 하고, 분노하기도 했다. 정도전 드라마에서, 선덕여왕 드라마에서 현재의 궁핍함을 찾아 마음의 공백을 달랬다.

역사에 대한 이러한 국민적 열기와 다르게 청소년들은 별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역사 교과서에 나오는 수많은 사건과 인물에 질식된 것인지, 아니면 더 자극적이고 재미 넘치는 게임에 열중한 탓이리라. 그런데 우리 청소년이 역사에 대한 관심을 갖고 행동으로 옮기고 있다.

역사에 관심 없던 일반 국민도 역사와 교과서의 의미를 알기 시작했다. 2008년의 쇠고기 문제처럼 온 국민의 먹을거리와 관련된 것도 아닌데도 역사학자와 역사교사의 차원을 넘어 지식인, 일반 교사, 학생은 물론 일반 국민까지 뒤흔든 사회 쟁점이 되었다. 교과서 문제를 넘어 우리나라의 교육정책이 ‘국가적 차원의 미래 지향 차원’이 아니라 ‘정권 수호의 수단’으로 변질되어 있는 현상도 더불어 보여 주었다. 전교조 운동의 존재 의의를 권력이 정당화시켜 주는 모양이 되었다.

이번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사태를 통해 보수세력의 민낯을 일반 국민이 자연스럽게 볼 수 있게 된 것도 의미있게 생각한다. 여론조사를 보면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지지는 지역과 세대를 넘고 있는 게 사실이다. 일제 강점기와 해방 전후의 혼란, 6.25의 비극을 거치면서 누적된 ‘민생고’를 해결해 준 그의 지도력에 박수를 보내고 있다. 하지만 그의 딸이 아버지의 과오를 인정하고 극복하려 하기보다는 아버지의 행태를 준칙으로 삼으며 무리하게 미화하는 과정에서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흑역사가 절로 드러나 버렸다.

일본 관동군에 혈서 지원을 한 사실은 진즉 드러난 사실이거니와, 관동군으로서 독립 운동을 지원했다는 낭설은 허황된 것이라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더욱이 어머니를 불행하게 잃고 나서 퍼스트레이디 아닌 퍼스트레이디가 되어서 맡았던 새마음봉사단의 실체가 드러났다. 남북 관계의 개선이나, 민생 문제 해결에 전념하고, 무리하게 국정화를 추진하지 않았더라면, 아버지와 자신의 흑역사가 굳이 논란이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집권 여당의 원내대표인 김무성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의 부친은 1920년대까지 분명 민족 실력 양성 운동에 참여하였고, 전남방직이 해방 이후 어려웠던 시절 광주에 여성 일자리를 제공해 준 점에서 김무성은 호남권의 지지를 얻을 수 있는 유리한 위치에 있었다. 그럼에도 그는 30년대 이후 부친의 친일 행적을 미화하고, 국정화 추진 5인방으로서 전혀 말도 안되는 논리를 내세우며 무대뽀로 밀어붙였다. 친일인명사전 초판 발간 때 증거 불충분으로 수록이 보류되었다가 이번 과정에서 집중 검증 대상이 됨으로써 부친의 친일 행적을 확실하게 공인받는 영예를 안게 되었다.

뉴라이트 집단의 반지성, 반민족적 행태가 이번 교과서 파동에서 그대로 드러났다. 역사를 보는 눈은 여러 가지다. 일제강점기의 역사가 비록 식민지 상태였지만, 근대화된 부분이 있다고 볼 수 있다. 박정희 정부의 경제개발 정책과 기업인의 공을 적극 평가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들은 자신들의 주장을 논문으로, 수준 높은 교과서 제작으로 이루려 하지 않았다. 선구자에게 요구되는 최소한의 도덕성도 없었다. 권력이 분배하는 문화계 요직을 꿰차고 나머지를 적으로 돌리고서 대다수 국민의 상식적인 정서와는 맞지 않은 학설을 정설로 만들어 국민에게 강요하고 있다. 국가와 민족의 이익을 앞세우는 우익 세력의 일반적 행태와는 거리가 멀다.  

집권 세력은 스스로 약속했던 누리 사업을 지자체에 떠넘기고, 국정화 추진에 혈세를 탕진하고 있다. 어용학자와 교사를 동원하여 교과서를 만들어 낼 수는 있겠지만 결코 목적을 이룰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역사의 중요성과 교과서의 존재 의미를 깨닫게 해 준 점은 씁쓸하지만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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