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현
현대여성아동병원
원장
평범한 사람들이 현실 정치에 참여하는 거의 유일한 방법은 선거다. 또, 선거를 통해 정치 행위자인 정당을 만나기 때문에 그 때나 되어야 비로소 정당을 경험한다.

선거가 한참 남았는데도 정당(또는 정당이 되려는 세력)이 우리의 주의를 끌고 있다. 그 중에서도 이른바 제1 야당의 혼란과 난맥이 두드러진다.

우리의 관심은 한참 떨어진 자리에서 관전평이나 하는 것이 아니다. 건강과 보건의료의 현실 역시 지극히 정치적이라고 할 때, 정치의 실력은 우리의 삶에 직접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절감한다. 그 시끄러웠던 메르스, 지리멸렬한 후속 대책을 보라.     

보통 사람들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첫 번째 현상은 계파 또는 정파다.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현대 정당이 박정희시대의 여당이나 유신정우회 같기를 기대하는 것은 아니다. 나누어 다투고 경쟁하는 것이 당연하다.
지금 정당들의 파당은 나누고 나누어진 기준이 도무지 요령부득이다. 이름부터 그렇지만 이런 잣대가 무슨 정파라고 할 수 있는지 민망하다.

유력한 정치인을 중심으로 나누어지는 것이 오래된 전통이라는 것을 몰라서 하는 소리가 아니다. 과거에는 정치자금이라는 현실적 이유라도 있었지만, 지금은 그것도 아닐 텐데 왜 그러는지 수수께끼다. 

두 번째는 ‘혁신’의 정체를 알기 어렵다는 것이다. 어느 정당이든 무슨 힘든 일만 있으면 ‘환골탈태’와 ‘개혁과 혁신’을 내세운다. 혁신과 개혁이 요란하지만 도무지 정체를 알 수 없다. 무엇을 혁신하겠다는 것인지, 왜 그래야 하는지, 혁신된 미래의 모습은 무엇이 얼마나 다른지. 이해력이 떨어져서 그런 것이면 누가 친절하게 설명해 줄 것을 부탁한다.

혁신하려고 하는 것은 정당의 지향성인가? 정당을 구성하는 방식인가? 그도 아니면 유권자를 대표하는 방식인가?

셋째로, 경쟁의 방식도 쉽게 이해하기 어렵다. 집권을 바라는 경우는 당연히 정당끼리 경쟁해야 하고, 정당 안에서도 유력한 정파와 지도자가 되기 위해서는 경쟁을 피할 수 없다. 흔히 정치를 대안과 가치에 대한 경쟁이라 하지만, 지금의 정당이나 정치 지도자는 무엇을 어떻게 경쟁하고 있는가?  

 현실 정치가 오래되고 익숙한 정치 지형(예, 연고/지역)에 의존하는 것임을 모르지 않는다. 기존의 질서 안에서 늘 불리할 수밖에 없는 야당은 달라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실망스럽다.

또한 우리의 냉소를 먼저 짚어야 하겠다. 우리가 정당 혁신을 요구하는 것은 여전히 좋은 정치와 정당을 필요로 하는 엄혹한 현실 때문이다. 임금 피크제, 청년 실업과 일자리, 자영업의 몰락, 복지 후퇴…. 크고 작은 사례는 열거하기에도 벅차다. 요컨대 우리의 고단한 현실에 개입하기 위해서는 정치와 정당을 우회할 방법이 없다. 냉소와 조롱이 아니라, 현실 정치를 압박해야 우리의 삶이 달라질 수 있다.

지연과 학연, 그리고 수많은 연고를 넘어선, 가치와 지향을 중심으로 한 정당과 정파, 그리고 이에 기초한 혁신을 촉구한다. 현실의 어려움과 토대의 한계를 말하지 말라. 그런 현실을 극복하는 것이야말로 현실 정치의 전문가인 그대들이 할 일이다. 다른 모든 현실 정치의 요소는 여기에 복종해야 한다.

가치와 지향이 무엇을 뜻하는지 모호하다면, 보건의료에서 몇 가지 예를 들고자 한다. 다른 분야에서 무엇을 물을지는 미루어 짐작하기 바란다. 
  첫째, 건강과 보건의료의 공공성을 어떻게 할 것인가. 공적 사회보장과 민간보험의 역할, 보건의료 공급의 주체와 방식(예, 공공병원), 보건소와 지방의료원, 국립 병원의 역할, 민간 병원이 기여할 바에 명확한 입장이 있어야 한다.

둘째, 보건의료 영리화, 산업화, 시장화에 대한 명확한 태도를 묻는다. 이것이 정권과 정부의 정치경제적 노선이라고 이해한다면 어느 정당도 모호한 태도를 가져서는 자격이 없다. 보건의료는 상품과 산업, 영리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는가, 아니면 기본권이자 삶의 질, 또는 복리인가.

셋째, 불평등에 대한 입장이 중요하다. 소득 불평등이 더욱 깊어질 것이 뻔한데, 혁신된(?) 정당은 성장을 위해 불평등을 감수할 것인가, 온 힘으로 저항할 것인가.

내침 김에 묻는다. 지역 연고와 개인의 친소관계, 당선의 가능성, 이런 것 말고 당신들이 실현하고자 하는 가치는 무엇인가? 이것만은 명확히 밝혀 달라! 만들든 뭉치든 헤어지든, 맘대로 하시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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