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을 품은 도시, 순천.

▲ 이정우
민들레하나한의원장
이 구호를 처음 들었을 때 마음이 참 포근해졌다. 한 번 더 생각해보았다. 사실 정원은 도시가 품어야 할 곳이 아니다. 우리의 전통 정원은 남 보란 듯 앞으로 품지 않았으며, 정원이 나를 안아주듯 뒤뜰에 등지고 있었다. 창덕궁의 후원처럼. 그리고 정원은 건물과 함께 자리해야 그 가치가 온전하다. 예로부터 정원은 생활공간에 붙어있어, 복잡한 일상의 피로와 혼란을 잠시 뒤로하고 여유를 찾는 장소였다. 담양의 제월당 옆 소쇄원처럼.

건축물 앞에 자리한 안마당은 집안 대소사를 치르고, 고추나 벼를 말리는 등 작업을 하는 곳이다. 그래서 늘 비워두었다. 배산임수의 택지는 뒷동산과 연결되어 있었고, 뒤뜰을 살짝 다듬어 자연을 끌어들이고 화초나 수목을 심어 정원으로 가꾸었다. 이와 달리 대문을 열자마자 보이는 안마당에 꽃밭을 조성하고 나무를 심는 것은 일제강점기에 들어온 일본식 취미였다.

 
‘정원이 있는 삶’은 어떻게?

모름지기 정원은 한 나라의 왕이나 한 지방의 권세가 정도는 되어야 집안 한 곳에 차려놓고 여유를 부릴 수 있었다. 이제 시민이 ‘정원이 있는 삶’을 영위할 문화적 토대를 마련하여야 한다. 그런데 순천만정원은 단지 관광객에게 보여주는 볼거리일 뿐 순천시민 옆에 있는 생활공간이 아니다.
순천만정원은 여느 관광지처럼 피곤한 생활의 도피처로 전락하거나, 고단한 일상을 제쳐놓고 잠시 잠깐의 쾌락을 도모하는 유흥지가 아니어야 한다. 하루하루의 삶 자체가 여유롭고 평온한 ‘정원이 있는 삶’을 순천시민이 살아야 한다. 순천만정원을 잘라 마을 옆으로 옮길 수도 없는 데 이런 요구가 과연 실현될 수 있을까?
 

공원을 정원처럼

순천시는 텃밭 조성사업 등을 통해 정원도시를 만들기 위해 애쓰고 있다. 또 마을 주변 곳곳에는 작은 공원이 있다. 그런데 물질적으로는 어느 정도 갖추었지만 이를 운영하는 문화적 수준은 아직 높지 않은듯하다. 얼마 전 출근하는 데 공원을 재정비하는 트럭들이 보였다. 수개월 전에도 정비했는데 다시 정비를 하고 있었다. 그 트럭들은 ‘공무수행’이라는 딱지를 떡하니 붙이고서 잔디 위에 주차하고 있었다. 잘 보니 공원 안으로 어떻게 올라갔는지 공원에 깔린 잔디를 짓뭉개고 지나간 흔적이 뚜렷하게 남아 있었다.

 
순천만정원이 국가정원이 되었다고 시내 도로에는 플래카드로, 인도에는 화분으로 뒤덮여도 마음까지 뒤덮지는 못한다. 플래카드를 내걸 정성을 마을 옆 공원에 쏟고, 보여주려 인도에 놓인 화분을 공원에 심었으면 어땠을까? 일본 정원처럼 안마당에 화초를 키워 남 보란 듯 앞으로 품지 말고, 우리 정원처럼 자기 식구에게 위안이 되는 뒤뜰을 가꾸어야 한다. 그 후원이 마을 옆 공원이면 참 좋겠다.
 
이정우 민들레하나한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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