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박한 파국

‘임박한 파국’이라니? 자본주의의 파국이 임박했다는 것이다. 슬라보예 지젝(Slavoj Zizek)의 진단이다.

▲ 「꾸리에」에서 출판한 이택광의『임박한 파국』표지.
지젝, 누구인가. 1949년 슬로베니아 태생으로 마르크스의 사회학과 라캉의 정신분석학을 결합시켜 일가를 이룬 세계적인 철학자이다. ‘시차적 관점’‘이데올로기라는 숭고한 대상’ ‘레닌 재장전’ 등 그의 15여 권의 책이 우리나라에 거의 번역 출간된 바 있다. 그런데 그는 대학 강단에서 강의하면서도 대중적이고 현장 중심의 철학자이다. 유고슬라비아 해체 후 슬로베니아 대통령선거에 출마하기도 하였으며, ‘월가를 점령하라’는 뉴욕 시위현장에서 연설하기도 하였다. 우리나라에 와서는 비무장지대를 방문하는가 하면 쌍용자동차 노동자 분향소를 방문하여 노동자들과 대화하는 거리의 철학자이다. 그는 그의 철학을 영화와 같은 대중물들을 통해 곧잘 설명하는데, 이를 두고 강단철학자들은 1%가 부족한 철학이라고 폄하하기도 한다. 그는 현재 가장 많이 소비되는 철학자 가운데 한 사람이다.

‘임박한 파국’은 총 7부로 구성되어 있다. 이 책은 부제 ‘슬라보에 지젝의 특별한 강의’에서 알 수 있듯, 지젝이 2012년에 우리나라 대학에서 두 번에 걸쳐 행한 강연 내용을 중심으로 하여 구성되어 있다. 여기에 두 번의 인터뷰가 곁들여져 있어 지젝의 생각과 사상을 이해하는 데 한층 깊이를 더하고 있다. 핵심 내용은 1부와 2부 그리고 4부에 담겨 있다고 판단한다. 각각의 주제는 1) 왜 자본주의의 파국이 임박해 있다는 것인가? 2) 왜 우리는 그것을 깨닫지 못하는가, 그리고 지금 여기에서 무엇을 할 것인가? 3) 사회적 공동선으로서 생태학이 담보해야 할 윤리도덕은 어떠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들로 요약할 수 있다. 간략히 살펴보자.

1) 왜 자본주의의 파국이 임박해 있다는 것인가?

세계 모든 나라들은 미국의 대외 무역적자에 기초한 경제 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것은 정말 이상한 시스템이다. 2008년의 위기는 이 시스템에서 비롯되었다. 이 시스템의 균형은 미국이 빚을 갚지 못하는 깊은 불균형에 기초해 있다.(18~19쪽, 이하 괄호 숫자는 책 쪽수) 금융 파국을 자초한 것은 몇몇 탐욕스럽고 부패한 금융자본가 개인들이 아니라 시스템 자체에 있다.

2) 지금 여기에서 무엇을 할 것인가?

자본주의는 실업을 필연적으로 창출해 내기 마련이다. 우리는 이와 같은 현상을 명확히 왜 예측하지 못하는가? 자본주의의 실상은 그 시스템 자체에 주목함으로써만이 인식할 수 있는데, 우리는 자본주의 모순을 항상 개인적 탐욕이나 부패에서만 찾는 데 원인이 있다. 왜 시스템 자체에 주목하지 못하는가? 자본주의는 자신의 시스템의 작동원리를 이데올로기화함으로써 은폐시킨다. 이데올로기는 우리의 생각을 지배한다. 그것은 사유의 구조적 틀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유기농 사과를 먹음으로써 환경보호운동에 일조했다고 생각하거나, 자선단체에 매월 20달러 정도 기부함으로써 자선활동에 동참했다고 자위한다.(65~66) 혹은 카푸치노 한 잔을 마실 때마다 2달러씩 소말리아 아동에게 전달된다는 스타벅스의 그럴 듯한 자본주의 해결책에 동참함으로써 아주 손쉽게 죄책감에 벗어난다. 이런 손쉬운 해결책들은 기실 문제의 근원을 철저히 외면하는 자기기만의 행위인 것이다.(74)

3) 사회적 공동선으로서 생태학이 담보해야 할 윤리도덕의 내용은 어떠해야 하는가?

지젝은 생태학을 두 가지 점으로 나누어 논의한다. 하나는 전통적인 환경보호와 같은 생태학 논의와 관련되며, 다른 하나는 새로운 생태학 논의로서 유전공학과 관련된 것이다.

지구환경이나 자연에 대한 지젝의 관점은 아주 급진적이다. 그는 “안정되고 조화로운 질서 있는 자연, 그런 것이(은) 존재하지 않는다”(123)고 한다. “따라서 어머니 지구, 조화로운 균형을 이룬 자연에 사악한 인류가 들이닥쳐 조화를 무너뜨렸다는 인간중심주의적 메타포는 버려야”(123) 한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그는 “동양적이든 서양적이든 우리 자신을 깊이 들여다보라는 부류의 영적인 시각에 동의하지”(120) 않는다. 이런 점에서 지젝은 유기체적인 자연관에 반대하는 근대 기계론적 관점을 지녔다고 말할 수 있다. 다음, 새로운 현상에 대한 생태학 논의는 주로 ‘인간’만이 존재하는(125) 과학적 행위와 관련된다. 이 논의는 지질학적 요소로서 작용하는 인간행위와 유전전공학과 같은 지적 행위로 나누어 이루어진다. 전자는 산샤댐과 같은 대규모 토목사업이 스촨 대지진이라는 대재앙을 일으킨 데서 볼 수 있는 현상이라고 한다. 후자는 유전공학에 의해 자연을 왜곡시킴으로써 본래의 자연 자체를 소외시키는 결과를 가져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주를 이룬다. 지젝은 “일단 유전공학적인 방법으로 생명을 재생산할 수 있게 되면 자연은 자동적으로 또 다른 메커니즘”이 된 나머지는 자연은 고유의 자연적 특성을 상실하게 되어 자연의 종말을 초래한다고 한다.(127~128)

끝으로 지젝은 앞으로 인류가 환경문제에 대처하는 데 있어서, 꿀벌의 대규모 사망과 같은 불투명하고 예측불가능한 자연의 우발성(137), 즉 “자연에는 진화나 진보는 없”(137)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리고 대타자(Big Other)나 거대한 전체주의적 총체성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전제하에 우리 스스로 닥쳐오는 재앙에 대처해야 한다고 한다. 

이상 세 가지 의제는 직접적이거나 간접적으로 자본주의와 연동되는 것들이다. 지젝은 파국이 임박한 자본주의가 야기하는 문제점들에 대하여 명백한 어떤 해결책을 내놓지는 않는다. 그는, 우리는 문제 투성이인 자본주의를 잘 관리하는 전문가가 되기보다는 자본주의의 근원적인 모순을 천착할 줄 아는 지식인이 되어야 한다는 점만을 완곡하게 말할 뿐이다.(88~89) 덧붙여 그는 자본주의가 야기하는 문제들에 대처하는 방안은 항상 급진적인 비판정신에 토대를 두어야 한다고 한다. 자본주의가 주도하는 모든 문제는 이데올로기적이라고 전제하기 때문이다. 그의 논의의 장처와 단처는 아마 이 전제에 있지 않을까 한다.

임성운
순천대학교 명예교수, 국어국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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