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성호의 ‘식민지 유산 ’의 한국현대사<1>

해방 70주년이 되었지만 친일 논쟁은 여전하다. 이는 식민지 유산을 완전히 청산하지 못한 까닭이다. 그렇다면 식민지 유산이 무엇이기에 70년이 지난 지금도 영향을 미치는 것일까.

먼저, 식민지 유산의 청산에 대한 논의는 지금까지‘친일파 처단’이라는 인적 청산으로 초점이 모아졌다. 그러나 식민지 유산은 이보다 더욱 구조적이고 체제적인 차원에서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식민지배의 경험을 통해 우리는 국가주의적 사고방식과 행동방식을 체득했고, 이것이 남북한 체제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데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했다.

식민지 유산은 한국현대사를 결정짓는 구조적 요인이다. 해방 이후의 역사는 식민지 시기의 역사와 연속성을 가지고 있다. 해방 이후의 역사는 식민지 유산을 토대로 작동하고 있다.

성균관대학교에서 사학을 전공한 강성호 씨의 글을 통해 식민지 유산이 구체적으로 우리나라 현대사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살펴보는 기회를 갖자.

▲ 강성호
순천YMCA 간사

친일파 문제로 한국 사회가 시끌시끌하다. 해방 70주년이 되었지만 친일파 문제가 계속 논란이 되는 이유는 이것이 과거의 문제가 아니라 현재의 문제로 계속 부각되고 있기 때문이다. 당장 우리나라 현직 대통령과 여당 대표의 아버지가 친일파 논란의 중심에 서 있다. 작년에는 한 국무총리 후보가 일제의 식민지배는 하나님의 뜻이라고 발언하여 큰 파문을 일으켰다. 일각에서는 제도권 역사학을 ‘식민사학’이라고 비판하기도 한다. 그래서 과거사를 제대로 청산하지 못한 나라가 처하게 되는 상황을 우리나라가 잘 보여주고 있다고 평가하는 사람도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과거사 청산 문제는 아주 중요한 역사적 과제였다. 과거사 청산은 새로운 나라를 만들기 위한 정체성을 확보하는 데 필수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다른 나라의 경우 상대적으로 철저하게 과거사를 청산하였다. 중국의 한간(漢奸) 처단과 프랑스의 콜라보(Collaborateur) 숙청이 대표적이다. 남한은 친일 혐의를 받는 인사들이 지배층을 구성했기 때문에 과거사 청산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다. 이것은 남한 사회가 식민지 유산의 영향력을 떨칠 수 없게 만들었다.

그런데 지금까지 남한 사회는 식민지 유산의 청산 문제를 ‘친일파 처단’이라는 인적 청산의 문제로만 생각해왔다. 남한 사회의 과거사 청산이 미완으로 끝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철저한 친일파 청산이 이루어지지 못한데다가 인적 청산만을 전부로 여겼기 때문이다. 실상 식민지 유산의 청산은 두 가지 방향에서 이뤄져야 했다.

첫 번째는 국가 간에 발생한 ‘전쟁’의 문제이다. 식민 지배를 당한 입장에서는 일제의 보상과 사과를 제대로 받지 못했기 때문에 억울하겠지만, 식민지 조선의 국민은 일제의 침략전쟁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했기 때문에 전쟁 책임으로부터 절대 자유로울 수 없다. 대다수는 일제의 강요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침략전쟁에 동원되었겠지만 말이다.

두 번째는 식민 지배를 통해 형성된 ‘체제’의 문제이다. 식민지 유산의 문제는 인적 청산보다 더욱 구조적이고 체제적인 차원에서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식민지배의 경험을 통해 남한 사회는 국가주의적 사고방식과 행동방식을 체득했고, 이것이 남북한 체제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데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사례가『그들의 새마을운동』(김영미, 푸른역사, 2009)에 소개된 이천시의 아미리 마을이다. 이 마을은 1970년대 새마을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두 번씩이나 자립마을로 선정되어 대통령 하사금을 받았다. 재미있는 점은 일제시기에 새마을운동의 효시라고 할 수 있는 농촌진흥운동이 시행되었을 때도 아미리 마을이 상을 받았다는 사실이다. 이는 체제 순응적이고 근대 지향적인 아미리 마을의 특성이 일제시기에 형성되어 1970년대 새마을운동을 통해 표출되었음을 의미한다. 이를 통해 국가권력은 농촌을 동원 체제에 포섭할 수 있었고, 구조적 문제에서 발생한 농촌의 위기를 게으름, 낭비 등으로 설명하는 사사화(私事化)방식을 통해 은폐할 수 있었다. 일제의 농촌진흥운동과 유신정권의 새마을운동이 갖는 유사성은 식민지 유산 문제가 체제의 차원에서 고려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식민지 유산은 한국현대사를 결정짓는 구조적 요인이다. 해방 이후의 역사는 식민지 시기의 역사와 연속성을 가지고 있고, 식민지 유산을 토대로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우리는 식민지 유산이 구체적으로 한국현대사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먼저, 우리는 과거사 청산이 어려울 수밖에 없었던 구조가 극우반공체제의 형성을 통해 귀결되었음을 살펴보고자 한다. 그리고 미완의 과거사 청산이 해방 이후 어떠한 비극으로 나타났는지를 조명하려고 한다. 이를 통해 식민지 유산이 한국현대사에서 어떻게 재현되었는지 알아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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