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상훈
여수YMCA 사무총장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 날씨는 청명하고 거둔 곡식 창고에 가득하니 콧노래가 절로 난다. 올해 날씨가 좋아 곡식 과일이 풍성하고 잘 익었다니 농경사회만 같았다면 이 얼마나 좋은 일이겠는가.

하지만 이미 산업사회를 지나 예측불가 미지사회로 치달아가는 21세기하고도 한복판에서 맞는 한가위 풍년은 외려 무심키만 하다. 잘 익은 곡식은 수입농산물에 치여 천덕꾸러기가 되고, 농촌을 떠난 도시노동자들은 실직하지 않기 위해 아등바등 하고, 그나마 청년들은 일자리가 없어 셋, 다섯, 일곱도 모자라 절망마저 포기한 채 무기력한 나날을 버티고 있다.

가난과 배고픔보다 더 무서운 무한경쟁의 쳇바퀴가 순간의 망설임마저 허용치 않고 돌아가는 일상 속에서 보통사람은 오로지 ‘농민 노동자 청년 노인’이 되지 않기 위해 앞만 보고, 마찬가지로 뒤쳐져서는 안 될 자기 자식만 들쳐 업고 뛸 뿐이다.

무엇이 우리를 이렇게 만들었을까. 쉽게 낼 답은 없다. 하지만 이런 쳇바퀴가 더 이상 속력을 내지 않도록 늦추거나 멈추도록 해야 한다. 목적지가 빤하거나 아예 없는 이 무한질주를 멈춰 느리지만 함께 살아가는 따뜻한 공동체 문명으로 궤도를 바꿔야한다.

누가 해야 할까? 정답은 우리 모두이겠지만 우선은 우리사회 지도자들이다. 권한을 위임받은 정치인과 행정 관료들이다. 만일 지금 우리사회가 뭔가 잘못되어 있다면 이는 오롯이 이들의 잘못일 것이다. 표를 받아 권력을 쥔 대통령을 비롯한 국회의원, 지방단체장, 지방의원들이 녹봉을 받으며 집행권을 가진 관료들을 지휘해 바꿔야할 일이다. 그리고 보다 근본적으로 이들을 잘못 뽑고 잘못을 질책하지 못한 우리들이 책임감을 갖고 바꿔내야 한다.

이런 가운데서도 요즘 정치권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쇼에 열중하고 있다. 또 한 번 그들만의 잔치인 국회의원 선거가 반년 앞으로 다가오고 있기 때문이다. 300개의 떡을 어떻게 나눠먹을 것인지 정작 결정권을 가진 국민은 안중에 없이 자기들끼리 요리조리 붙였다 떼었다 요란법석이다. 하지만 이들 욕할 일이 아니다. 결정권을 내려놓고, 아니 처박아놓고 구경만 하거나 침만 뱉거나 이런저런 연고로 떡고물이나 떨어질까 기웃거리는 우리가 그렇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우리 스스로 너무 자조하지는 말자. 우린들 그러고 싶었던 것은 아니지 않은가? 짝 갈라진 지역감정 조장해 특정 정당 판쓸이 머신으로 표를 쓸어 담아가니 용쓸 재주가 없기는 우리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니 이제 욕하고 진저리치고 쓴웃음 날리는 대신 좋은 지도자를 찾는 데 못다 한 열심을 조금만 더 내보자. 물론 선거 때마다 좋은 후보 찾고, ‘지역감정 타파’, ‘인물 중심’을 외치곤 했다. 그런데 좋은 후보가 누군지 알 수가 없어 매번 그 밥 그 나물에 표를 던지고 말았다.

그래서 말이다. 아직 6개월 남은 동안 좋은 정치지도자 찾기 교과서를 한 번 만들어보자. 10개든 100개든 우리 속을 잘 헤아리고 이 시대가 가야할 방향을 제대로 읽고 그에 맞춰 우리 지역이 지향해야 할 비전을 제시할 수 있는 리트머스 시험지 같은 것을 만들어보자. 이 시험지를 통해 알짠지 쭉정이인지 금방 구별해낼 수 있다면, 우리 선택이 쉬워지지 않을까.

다른 것은 모르겠다. ‘혼자서는 부끄러워 장미나 카네이션을 받쳐주고 기뻐하는 꽃, 남을 위해 자신의 목마름을 숨길 줄 아는 하얀 겸손의 꽃’ 이해인 수녀가 노래한 안개꽃 같은 정치인이면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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