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랑 싸웠어』/ 이토 히데오 그림, 시바타 아이코 글 / 시공주니어

▲ 심명선
어린이책시민연대 전 대표
어른들은 종종 아이들의 문제를 어른이 대신 해결해 주어야 한다고 오해한다. 옳고 그름의 기준을 어른이 말해 주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아이들은 그들만의 옳고 그름의 기준을 가지고 있다. 아이들은 어른이 만든 사회에서 어른과 함께 살면서 몸으로 체득한 경험을 바탕으로 이미 그들의 기준을 만들어 간다. 그 기준을 바탕으로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한다. 자라면서 지금까지와 다른 경험을 통해 기준을 바꿔 가겠지만 그것을 나 아닌 다른 사람이 대신 할 수는 없다. 더욱이 아이들 문제 해결의 포인트는 어른들의 잣대와 무관할 때가 많다.

‘친구랑 싸우고 온 아이에게 무슨 말을 해 줘야 할까?’라는 생각으로 이 책을 본다면 전혀 다른 질문과 만나게 된다. 다이는 친구 고타와 싸우고서 고타가 사과를 하는데도 ‘하지 마! 하지 마! 하지 마! 사과하지 말란 말야!’라며 사과를 거부한다.

 
어른들은 아이들이 싸우면 사과를 부추기기 마련인데 사과를 거부하다니 걱정스럽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아직 분이 안 풀렸는데 사과를 받아야하다니 사과하지 말라는 다이의 마음에 확 공감이 된다. 사과를 부추기는 것이 얼마나 억지스러운 일인지도 다시 생각하게 된다. 그런데 다이는 왜 이렇게까지 분한 걸까? 다이와 고타는 가장 친한 친구다. 그런데 다이와 고타는 대판 싸웠다. 고타는 다이보다 힘이 세서 다이가 발로 차고 주먹으로 때리고 달려들어도 끄덕도 안하고 오히려 다이가 고타한테 채이고 나자빠진다. 그러자 다이는 고타에게 “싫어, 하지 마”라고 말한다. 고타는 바로 멈추질 못하고 다이의 어깨를 팍 밀치는데 다이는 엉덩방아를 찧고 만다. 그래서 다이는 화나고 분했다. 하지만 책을 읽는 나는 다이가 고타의 주먹과 발길을 참을 수도 막을 수도 없다고 생각되는 순간 “싫어, 하지 마”라고 말하는데 이 순간 다이가 참 당당해 보인다. 다이는 힘이 약해서 맞으니 어쩔 수 없다고 생각지 않고 ‘싫다’고 말한다. 다이와 고타 모두 그 순간 싸움을 멈춰야 한다는 걸 안다. ‘싫어!’라는 말이 힘을 발휘하는 순간이다. 아이와 함께 생활하다보면 싫다는 말을 하루에도 몇 번씩 듣는다. ‘이것 좀 먹어봐’ ‘싫어!’, ‘숙제부터 해.’ ‘싫어!’, ‘문제집 좀 풀어라’ ‘싫어!’, ‘피아노 연습 좀 하지’ ‘싫어!’, ‘이것부터 하고 놀아야지’ ‘싫어!’ 이럴 때마다 싫다는 말은 무시당하기 십상이다. 부모 입장에서는 하는 말마다 싫다고 대답하니 답답하겠지만 아이 입장에서 보면 싫은 것만 하라고 하니 얼마나 답답하겠는가? 게다가 싫다는 대답이 매번 먹히질 않고 무시당하거나 다시 부모에게 설득 당했다면 ‘싫어!’라는 말은 힘을 잃게 된다. ‘싫어서 어쩔 건데 싫어도 참아!’ 하면 그만이다.

학교라는 말을 떠올릴 때 학교폭력이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따라서 생각날 정도로 학교폭력이 사회 문제로 얘기되고 있다. 폭력이란 단순히 때리는 것만이 아니라 상대방이 싫어하는 걸 계속하면 폭력이 된다. 그런데 ‘싫어!’라는 말이 힘을 잃었으니 폭력이 일상화 될 수밖에 없다. 학교폭력이 사건화 되었을 때 학생들은 장난이었다거나 상대가 그렇게 싫어하고 힘들어 하는 줄 몰랐다고 말하는 경우가 많다. 싫어하는 일을 하게 하는 것이 곧 폭력이라는 감수성이 우리에게 없기 때문이다. 이런 감수성이 일상에서 부모와 자녀 사이에서 가장 쉽게 무너지는 건 안타까운 일이다. 다이의 ‘싫어!’라는 말이 힘을 발휘한 것처럼 아이들의 ‘싫어!’라는 말이 힘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어른들의 몫이다.

“아이들을 진지하게 대한다면 그들의 능력에 놀라지 않습니다. 아이들의 지각 능력에 놀랄 때가 많은데, 그것이 바로 우리가 그들을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증거입니다.”라는 야누슈 코르착의 말처럼 어른의 눈으로 아이들의 성공을 함부로 평가하지 말자. 아이들이 어른에 비해 부족한 것들이 있듯이 어른도 아이들에 비해 부족한 것들이 있다. 어른들이 아이들을 진지하게 대할 때 어린이도 진지하게 반응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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