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병섭
순천공고 역사교사
새누리당이 한국사 교과서를 국정으로 발행하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여당 대표가 국회연설에서 소위 ‘개혁’의 하나로 한국사 교과서를 국정으로 만들겠다고 공개적으로 천명하기도 했다. 독재 정권하에서 진실을 접할 기회가 없어 조작된 이미지를 갖게 된 기성세대를 응원군 삼아 국정화 여론 조작을 일삼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다.

1970년대에 초중고를 다니면서 국정 국사 교과서로 수업을 받았고, 1980년대에 역사 교사가 되어서 국정과 검인정을 모두 가르쳐 본 필자로서 할 말이 많다.

첫째, 한국사 교과서를 국정으로 돌리려는 것은 민주주의 국가의 국격을 훼손하는 일이다.
민주주의의 기본은 다양성을 인정하는 데서 출발한다. 전국의 학교가 또 같은 교과서로 똑 같이 배우라고 하는 것은 국가주의의 발상이다. 학교 급별, 성별, 도시와 농촌 등 지역 사회는 물론 학생의 관심사에 따라 다양한 방법이 시도될 수 있어야 한다. 이미 교육 과정과 이에 따른 엄격한 검정 절차가 있어서 검인정이라고 할지라도 ‘멋대로’ 집필될 수 없으니 안심해도 된다. 더 나아가 교과서 자유발행제나 교과서를 아예 없애는 것도 시도해 봄직한데, 국정화를 추진한다는 것은 말도 되지 않는다.

둘째, 교과서는 정권과 지배 세력의 홍보물이 아니다.
이전 국정 교과서에서 가장 문제된 부분은 역시 현대사 단원이었다. 5·16을 혁명으로 4·19를 의거로 부르는 등 용어에서부터 국정 교과서 시기의 정부는 교과서를 정권의 홍보 기사로 메꿨다. 전두환 정부를 ‘정의로운 복지 사회’를 추구하는 정부로 기술한 것은 이 시기 교과서의 문제점을 상징적으로 보여 준다. 이런 실정이었으니 학력고사에서도 철저하게 외면당했다. 현 정부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추진론자들은 교과서에 집어넣으면 무조건 다 가르치게 될 것으로 착각하겠지만, 기대와 달리 집권 세력에 대한 불신과 냉소만 가져올 것임이 분명하다. 

 셋째, 교학사판 한국사 교과서 파동을 통하여 뉴라이트 세력의 학문 능력은 이미 심판받았다.
뉴라이트 세력은 구국의 사명감으로 ‘대안 교과서’라는 어마어마한 이름으로 교양서를 펴낸 바 있다. 이를 이어받은 교학사판 한국사 교과서가 나왔지만, 외면당했다. 검정 기준에 따르면 당연히 취소 처분해야 될 교과서를, 교육부가 갖은 편법을 동원하여 친절하게 교정까지 해주었다. 이전에 나온 국정 교과서 필진은 ‘징발 당했지만’ 사학계의 중진으로 학계의 신임을 받고 있는 분들이었다. 그들 가운데는 민주화 운동에 참여한 분도 계셨지만, 뉴라이트 교수같은 정치교수는 없었다. 만일 국정화가 결정되었을 때 누가 집필을 하게 될지 단정을 할 수 없지만, 문제 교과서의 집필자들이 또 참여할 것 같은데 써 낼 능력이나 있는지 의심스럽다.

넷째, 획일과 통제에서 창조력이 발휘될 수 없다.
현 정부가 내세우는 국정 철학의 하나가 ‘창조’이다. 하지만 국정을 운영하는 방식을 보면 전혀 창조적이지 않다. 대통령의 입만 바라보는 장관들에게서 창조적 혁신을 기대할 수 있을까? 인터넷의 발달로 온갖 정보가 유통되는데 교과서로 통제가 가능할 것인가? 최상의 교육은 지배층의 솔선수범에서 비롯된다. 지배층부터 청렴하고, 국민의 의무를 다한다면 국민은 절로 따르게 된다. 정부에서 역사를 왜곡하려 하지 말고 학계의 통설을 따라 준다면 국민은 절로 따를 것이다.

전국의 역사 교사 2255명이 국정화를 반대하고 나섰다. 서울대 역사 교수의 77%가 반대 서명을 하고 장관을 면담하기까지 했다. 국정화 반대 움직임은 학부모와 각 지역, 각 계층으로 확산될 조짐이다. 정부와 여당은 무리하게 국정화를 추진하려고 하지 말고, 그 열정으로 독립 정신을 계승하고, 민주주의를 지켜나가는 데 쓰기 바란다. 국정화 포기, 빠를수록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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