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등은 도둑놈 심보다?

▲ 이정우
민들레하나한의원
원장
작은 충격이었다. 차별에 찬성한다니! 비정규직이 똑같은 일을 한다고 정규직과 같은 대우를 해달라는 주장은 잘못이라는 말이다. 오찬호씨가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라는 책에서 50여 명의 대학생을 심층 인터뷰한 내용을 보면, 이들은 차별에 찬성한다. 노력한 게 다르면 결과도 다를 것이고, 그 성과에 따라 차별적으로 대우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이다. 초등학생 때부터 대학생 시절까지 남들 놀 때 안 놀고, 영어 단어와 수학 공식, 자잘한 스펙 쌓기에 투자한 게 얼만데 똑같이 취급하냐며 억울하다는 것이다. ‘동일 노동, 동일 임금’은 손대지 않고 코 풀려는 '도둑놈 심보'라며 짜증을 낸다.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해달라니?

요즘 대학생들은 비슷한 대학과 비교하는 것을 진정 마음으로 용서치 않는다. 연세대생은 서강대생과 비슷하게 취급하면 화를 낸다. 서강대생은 성균관대생을, 성균관대생은 중앙대생을, 인서울의 학생은 지방 국립대생을, 지방 국립대생은 지방 사립대생을 자신과는 수준이 다르다고 생각한다. 같은 대학생이라도 경영대생이 철학과 학생을, 같은 과라도 정시합격생은 수시합격생을, 수시합격생은 지역 균형 선발생을 무시하고, 자신과 구별 지어 대우하는 것이 합당하다는 것이다. ‘뿌린 대로 거둔다’는 말씀도 있고,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는 속담도 있다. 그런데 비정규직과 정규직을 같이 대접하라니, 하늘이 무너질 일이다.

이들에게 ‘수능 점수’의 차이를 ‘모든 능력’의 차이로 확장하는 것은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라고 말해주는 게 과연 정당할까? 너희가 잘못 생각하는 게 아니라 사회가 너희를 그렇게 만들었다고, 위로를 해주는 것이 과연 도움이 될까? 자신보다 낮은 곳에 있는 사람을 멸시하는 것이 아니라 보듬고 배려해야 좋은 사회가 된다고, 인간 본성의 측은지심을 상기하는 것이 과연 위안이 될까? 우리 기성세대가 한국의 미래인 너희를 이 지경으로 만들어 미안하다고, 자기반성을 하는 것이 과연 어떤 의미가 있을까?

능력에 따른 보수의 차이는 바람직한가?

대부분의 차별의식은 ‘능력주의’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세계적으로 빈부 격차를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로서, 사람의 능력에 따라 보수의 차별은 합당할 뿐만 아니라 바람직하다는 능력주의는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 학력과 학벌에 기반을 둔 능력주의는 부모의 경제력을 애써 외면한다. 자식의 능력은 부모의 자산에 비례한다. 그 능력이 어떻게 이루어졌으며, 출발점이 같았는지는 되돌아보지 않는다. 부모를 선택할 수 없는, ‘우연’의 소산이 탄생의 비밀임을 의식 속에서 지우려 한다.

‘세습 자본주의’는 한국에서 불과 100년 만에 깊은 뿌리를 내렸다. 이제 약육강식의 먹이사슬이 한국 사회에 닿지 않는 곳이 없다. 인간의 존엄성은 가진 자의 존엄성으로 대체되었고, 인간다움의 가치는 성공이나 소비의 가치에 종속되었다. 이의 변화가 시급하다. 그러나 슬프지만 지금 당장은 아니다. 그렇기에 지금 당장 내 속에서 꿈틀대는 ‘갑질’을 흉내 내는 ‘을질’, ‘병질’을 들여다보아야 한다. 우리들의 공동체를 만들어내고, 비록 작지만 이를 보여줄 때, 젊은이들과 희망을 얘기할 수 있지 않을까? 

순천민들레하나한의원 원장 이정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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