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현
현대병원 원장
정부의 발표를 그대로 믿는다면, 메르스 사태가 정점을 지난 것 같다.

일단 큰 고비는 넘긴 것 같은 분위기인데, 정부의 대응과 리더십은 여전히 불안하다. 새로 임명된 국무총리는 차라리 가만히 있는 편이 낫겠다 싶다. 취임하자 마자 내가 바로 ‘컨트롤타워’라고 선언했는데, 그건 그 자신과 이 정부가 그게 무엇인지도 모른다는 증거일 뿐이다. 임명되면 저절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고, 선언과 명령으로 작동되는 것도 아니다.

시장이나 보건소를 방문하고, 국민을 위로한다는 뉴스를 만드는 것이 그 역할이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뉴스를 만드는 ‘그림’의 뒤에 있을 번잡함과 고단함을 상상해 보라. 보고서를 만들고 의전을 챙기느라 그렇지 않아도 바쁘고 정신없는 마당에 민폐를 더할 뿐이다. 전체 상황을 관장하는 책임자가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도록, 조용히 그러나 꼼꼼하게 챙기고 일이 되도록 만들어주는 것이 바로 그의 몫이다.

희미하기는 하지만 출구가 보인다는 것이 지금의 조건이다. 그러면 확진자 수가 더 줄고, 사태가 안정화되어 가는 시점에 무엇이 더 중요해졌을까?

장기적 전망과 방향을 제시하는 역할에 주목한다. 이의 중요성이 점점 커지고 있고 앞으로 더욱 그럴 것이며, 이 정부가 임기를 다하는 때까지 그 책임이 계속될 것으로 본다.

구체적인 역할은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전망과 비전을 내놓아야 한다. 방역체계와 조직, 공공보건의료, 병원, 의료 제공 체계, 그리고 정치적 리더십 그 자체. 드러난 문제를 점검하고, 어떻게 미래를 만들어가야 하는지 제시해야 한다.

그러나 전망은 그다지 밝지 않다. 메르스 사태에서 나타난 리더십의 부재 또는 기능 부전과 함께 가까운 과거 경험으로 볼 때도 낙관하기 어렵다.

지역의 리더쉽은 더더욱 가관이다. 지역의 국회의원, 도지사, 시장·군수, 그 누구도 면피성 발언에 머물고, 정부 책임으로 돌리며 슬쩍 피하고 싶은 생각뿐이다. 지역의 고민은 아예 눈 씻고 찾아보기도 힘들다. 서로 다른 대안을 내놓는 것이 오히려 자연스럽고, 지방자치단체 스스로의 대안을 내놓아야 한다.

멀리 갈 것 없이 세월호 사건 ‘이후’를 보라. 그 어느 곳에서 ‘장기적 전망과 방향’을 제시하는 리더십이 작동했는가?

이번에도 ‘비난’의 정치가 아닐까 한다. 책임 묻기, 희생양 찾기, ‘폭탄 돌리기’, 그리고 수많은 ‘유체이탈’이 다시 등장할 것이다.

사실 이미 시작되었다. 
책임을 묻고 또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이는 장기적 전망과 방향을 어떻게 할 것인가와 연결되어야 비로소 가치를 만들어낸다. 이 지점에서 메르스는 불행한 세월호 사고와 만난다. 출구가 막 보이기 시작한 시점에서 판단하는 것이지만, 세월호 때와 전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책임을 개인과 개별조직, 특히 실무자에게 묻는 것은 결국 사회적 ‘린치’로 끝나고 만다. 비난의 정치가 성공한다고 해서 무슨 사회적 가치가 있을까. 이런 나쁜 시나리오를 거부하고 책임을 다시 조직하는 것이 리더십의 당면한 역할이다. 그러기 위해 대통령을 비롯한 책임 있는 ‘리더’들에게 요구한다. 비난의 게임에서 이겨 위기를 넘겠다는 유혹을 포기하라.

장기적 전망과 방향을 제시할 것. 책임정치를 회복하기 위해서라도 꼭 필요하다.
장기적 전망과 방향은 무엇인가? 앞으로도 다시 벌어질 수 있는 ‘공중보건 위기 상황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가 중심 질문이다. 장관 경질, 실무 책임자 문책, 정부 조직 개편, 보건 담당 차관 신설, 예산 증액, 공공의료 확충, 법률 개정 등의 단답이 아니다. 그것보다 훨씬 더 넓다. 민간과 각 사람, 문화와 가치, 행동의 방식과 환경까지를 포함한다. 그러니 조직이나 정책, 프로그램을 만들 것이 아니라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다.

결국 국가와 사회, 정부 시스템을 정비하고 재조직하는 일이 지금부터 리더와 리더십이 해야 할 역할이다. 당장은 목표에 이르기 위한 ‘과정’(누가, 어떤 길을, 어떤 방법으로 가야 할까) 그 자체를 조직해야 한다.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이 책임을 다할 것을 무겁게 요구하고 또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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