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의 설탕 두 조각』/ 미하엘 엔데 글, 진드라 차페크 그림 / 유혜자 옮김 / 소년한길


 

렝켄은 엄마, 아빠가 다정하게 대해주고 원하는 것을 들어주기를 바란다. 그러나 엄마, 아빠가 그렇게 해주는 일은 거의 없다. 계속 참고 지낼 수만은 없다고 생각한 렝켄은 요정을 찾아가 고민을 털어놓는다.

“엄마와 아빠를 어떻게 해야 좋을 지 모르겠어요. 내 말을 도대체 들어주지 않거든요…”
“상대가 한 사람이 아니라서… 나 혼자 두 사람을 상대하려니까 너무 힘들어요.”
“더구나 나보다 키도 훨씬 커요.”
“나보다 키가 작으면, 둘이라도 문제가 이렇게 심각하지는 않을 텐데.”

고민하던 요정은 렝켄에게 부모님이 렝켄의 말을 들어주지 않을 때마다 원래의 키에서 절반으로 줄어드는 마법의 설탕 두 조각을 준다.

마법의 설탕 조각을 먹게 된 엄마, 아빠는 렝켄을 평소처럼 대하다가 점점 줄어들어 결국 11.5, 10.5센티미터가 되버린다. “이게 다 엄마, 아빠가 내 말을 들어주지 않아서 생긴 일”이라고 얘기하지만 화를 내고, 부모를 웃음거리로 만들고 무시한다며 오히려 경멸한다. 이대로라면 더 줄어들어 엄마, 아빠가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때로는 화난 목소리로 때로는 다정한 말투로 자기 말에 반대하지 말라고 설득도 해보지만 소용이 없다.

휴지를 걸쳐야 할 만큼 작아진 엄마 아빠는 천둥치는 밤 위로가 되지도 못하고, 다친 손가락을 치료해주는데도 힘겨워 보인다. 또 친구가 데려 온 고양이에게 쫒겨 다니는 약한 존재가 되었다. 이제 렝켄도 엄마, 아빠도 원래 모습으로 되돌리고 싶지만 방법은 없다. 설상가상으로 늦게까지 놀다가 집에 돌아오니 문은 잠겨버렸고, 작아진 부모님은 그 문을 열어줄 수 없다.

어둠속에서 집 앞에 앉아 울던 렝켄은 어디선가 날아온 요정의 편지를 받는다. 렝켄은 다시 요정을 찾아가 상황을 되돌릴 방법을 묻는다. 결국 마법의 설탕 두 조각을 버리거나 그대로 둘 수도 없다면서 요정이 제시한 방법은 렝켄 자신이 마법의 설탕을 먹어 없애는 것. 꿈처럼 다시 현실로 돌아온 렝켄. 마법의 설탕 두 조각의 효과를 알고 있는 렝켄은 키가 줄지 않기 위해 순종적인 아이가 된다. 그러나 렝켄의 갑작스런 변화에 고민하는 아빠, 엄마에게 결국 자신의 비밀을 이야기하게 되고, 그 말을 들은 아빠는 마법의 설탕이 이미 몸 속에서 소화되어 없으므로 마법의 효력이 없을 것이라고 렝켄을 설득한다. 아빠 말대로 재주를 넘어 보라는 아빠의 말에 반대해도 몸이 그대로다. 렝켄과 엄마, 아빠는 서로를 부둥켜안고 기뻐한다.

아이들이라면 렝켄의 고민에 공감하면서 이 상황을 부러워할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아이를 키우는 부모로서 렝켄이 불만스러워하는 상황들에 선뜻 동의가 되지 않는다.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어서 돈을 달라고 하면 “한꺼번에 너무 많이 먹으면 배 아프다”고 하고, 운동화 좀 빨아 달라는 부탁에 “너도 이제 다 컸으니 네가 해”라고 하는 엄마 말에 더 수긍이 간다.

그런데 렝켄의 고민 해결을 위한 소원을 들어보니 생각이 달라진다. 단순히 제 입장에 반대하는 상대방이 미운게 아니다. 바다로 휴가를 가고 싶다고 하면 굳이 산으로 가겠다고 하는 반대 입장을 가진 상대가 늘 ‘둘 씩이나’ 되는 불평등한 상태에 대한 불만이다. 더군다나 제 입장과 다른 두 사람이 키도 훨씬 커서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다는 호소다. 부모라면 ‘무조건 내 말을 들어주어야 해’라는 억지가 아니라, 동등한 입장에서 의견을 말하고 인정받고 싶다는 간절함이다. 오죽하면 마법을 꿈꿨을까? 부모라는 것이 아이들에게 ‘넘.사.벽’임은 분명해 보이고, ‘마법의 설탕 두 조각’을 꿈꾸며 그 끝없는 높은 벽을 향해 그래도 부딪쳐보는 과정 속에서 아이들이 자라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후…렝켄은 부모님의 말씀을, 부모님은 렝켄의 말을 무턱대고 반대하지 않고 꼭 필요할 때만 그렇게 했습니다’로 이야기가 끝난다. 역지사지(易地思之)라고 했던가? 상대 입장에서 생각해보고 서로 이해하면 갈등이 줄어든다는 것을 말이다. 그러나 ‘꼭 필요한 때’에 대한 서로 판단이 다를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부모는 부모 입장에서, 아이들은 아이들 입장에서 그 꼭 필요한 때가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서로 인정하는 일이 필요하다. 아이들과 부모의 입장 차이에서 오는 갈등은 늘 존재할 수밖에 없고, 우리의 고민은 아이들과의 갈등을 없애는 방법이 무엇일까?가 아니라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고 어떻게 갈등을 조정하며 관계를 맺어갈 것인가에 있다. 특히, 부모의 돌봄을 필요로 하는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마법의 설탕 두 조각을 울며 겨자먹기로 먹어야하고, 이후 렝켄이 “예”라는 대답을 할 수밖에 없었던 마음을 생각해보면 부모 보다는 아이들에게 훨씬 가혹한 결론이라는 생각이 든다. 부모 스스로가 아이들에게 육체적이건 상황이건 넘사벽임을 인정할 때, 적어도 상대에게만 역지사지를 요구하지는 않게 될 것이다.

몸이 점점 줄어드는 당황스런 상황이 렝켄이 찻잔에 몰래 넣은 마법의 설탕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된 엄마가 했던 “넌 부끄럽지도 않니? 정신이 제대로 박힌 아이라면 감히 이런 짓을 하겠어?”라는 말을 부모로서 나에게 해본다. 일방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사랑, 관심, 배려라는 이름으로 아이를 존중하지 못했던 일들이 얼마나 아이의 마음을 쫄게 했을까 부끄럽고 미안한 마음이다.

 

 

 

 

심명선
어린이책시민연대 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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