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준철
 순천효산고 교사 시인
금요일은 팝송으로 수업을 하는 날이라 스웨덴 부부 가수 ‘아바’의 ‘I have a dream’을 골랐다.

“요즘은 꿈이 뭐냐고 묻는 것이 가장 잔인한 질문이라고도 하데요. 그래서 오늘 이 노래를 배우는 것이 조금 망설여지기도 했어요.”

“선생님, 그건 자격지심 아닌가요?”

누군가 했더니 K였다.

“오, K는 꿈이 뭐야?”
 
“군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 왜 군인이 되고 싶었어?”

K가 뭐라 대답을 했는데 다른 한 아이가 K의 말에 농담을 섞는 바람에 교실 분위기가 산만해지고 말았다. 농을 친 아이를 나무란 뒤에 왜 군인이 되고 싶었느냐고 다시 물었는데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저 군인 안 하기로 했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야? 군인이 되는 것이 꿈이라며?”

“저 그 꿈 버리기도 했습니다.”

“버리다니? 언제부터?”

“지금부터요.”
 
“왜?”

“기분 나빠서요.”

“알았다. 너처럼 단순하게 살 수 있으면 참 좋겠다.”

지나가는 말로 한 말인데 몇 아이가 동조의 웃음을 지어보였다. 그런 뒤 10분쯤 흘렀을까? K의 눈빛이 진지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한 번도 본적이 없는 모습이라서 슬슬 K의 표정을 곁눈질하는데 숨이 가빠올 지경이었다. K의 눈이 빛나기 시작한 것은 이 대목쯤이 아니었을까 싶다.  

lf you see the wonder of a fairy tale
(동화 속의 경이로운 장면을 볼 수 있다면)

You can take the future, even if you fall
(비록 실패해도, 당신은 미래를 잡을 수 있어요.) 

“여기서 wonder라는 말이 중요해요. 경이로운 장면이라고 번역을 했는데 경이로운 경험이라고 할 수도 있지요. 예를 하나 들어볼까요? K가 여자 친구가 있어요. K가 주인공이 아니고 여자 친구가 주인공인데 그 여자 친구가 K를 볼 때 조금 철이 없어 보이기도 하고 단순해보이기도 하고 그래요. 주변 친구들도 K는 별로 비전이 없어 보이니까 헤어지고 다른 남자 친구를 사귀라고 한 거죠. 그런데 K 여자 친구는 그 말에 귀 기울이지 않았어요. 왜 그랬을까요? 그것은 경이로운 한 순간의 경험 때문이었어요. 물론 K와 관련된 경험이었지요. 아니, K의 경험이라고 해야겠지요. 언젠가 K의 여자 친구가 엄청난 슬픈 일을 겪은 적이 있었는데 그때 K가 큰 위로가 되어주었던 거예요. 뭐, 특별한 일을 한 것은 아니지만 그 존재만으로 위로가 되는 그런 경험을 했던 거죠. 아마도 그때 K의 눈빛은 평소의 어리고 단순한 그런 눈빛이 아니었나 보죠. 미더움 같은 것이 느껴졌는지도 모르지요. 아무튼 그 한 순간의 경이로운 경험이 두 사람의 사이를 단단하게 만든 거죠.”

그날 수업은 이렇게 갈무리가 되었다.  

When I know the time is right for me
(나는 기회가 주어졌다고 생각되면)

I'II cross the stream, I have a dream
(냇물을 건널 거예요. 나에게는 꿈이 있거든요.) 

“여기서는 ‘right’라는 단어가 중요해요. right는 여러분들도 잘 알겠지만 옳은, 오른 쪽, 권리 등의 여러 가지 뜻이 있지만 ‘바로 지금’이나 ‘바로 그 사람’이라고 할 때 그 ‘바로’에 해당하는 말이에요. 여기서는 ‘바로 그 때’를 말하는 거고요. 그러니까 나에게 딱 적절한 때가 되면 냇물이나 강을 건너겠다는 거지요. 왜 강을 건너려고 할까요? 그건 강 건너에 뭔가 있기 때문이겠지요. 그 뭔가가 바로 꿈이라고 해야겠지요. 그런데 그 꿈을 실현하기엔 아직 때가 안 된 거지요. 거친 물살을 헤쳐가기엔 아직은 어리고 연약해서 위험할 수도 있겠지요. 그래서 자신을 더욱 강하게 단련시키는 시간이 필요하겠고요. 그런데 만약 강 건너에 있는 나무에 달린 열매를 보지 못했다면 강을 건널 생각을 하지 못했겠지요. 강을 건널 일이 없으니 강을 건널 때를 기다리지도 않았을 테고요. 그 때를 기다리면서 자기를 성장시키려고 하지도 않았을 거고요. 강 건너 보이는 나무에 달린 열매! 이것을 언젠가 내 것으로 만드는 것을 사람들은 꿈의 성취라고 말할지 모르지만 선생님 생각은 조금 달라요. 그 열매를 따기 위해 물살을 건널 때를 기다리며 자기를 성장시키는 것! 그 자체가 더 소중한 꿈이 아닐까 싶어요.”


 

저작권자 © 순천광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