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승 41호 순천만 이야기-다섯 번째

화포와 우명 마을을 지나면 지금은 일부 새우 양식장으로 이용되고 있는 옛 장산염전과 장산마을을 지나면서 왼쪽으로는 널따랗게 펼쳐진 평야와 오른쪽으로는 순천만의 널따란 갯벌을 만나게 된다. 장산 마을의 ‘장산(長山)’은 우리말로 ‘긴 산등성이’라는 뜻인데 옛 어른들은 이를 쉽게 발음할 수 있는 ‘진등’이라고 불렀다. 하지만 실제 진등(곧 장산)은 장산 마을에 있지 않고 장산마을을 지나 넓게 펼쳐진 평야의 왼쪽에 길게 뻗어있으며, 앞서 소개했던 순천을 지키는 용호문(龍虎門) 중 호산(虎山)을 이루고 있다. 산의 높이가 겨우 51m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언뜻 호랑이의 기세를 찾기는 어렵지만 지리적 위치로 보면 용산과 더불어 쌍을 이루어 용호문을 이룰만한 위치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장산마을에서 옛 대대포구가 있었던 순천만 무진교까지 이어지는, 약 4km 정도의 길다란 순천만 둑길은 보통 인안방조제 둑길이라고 불리며, 그 둑길 안쪽의 널따란 평야는 인안들로 불리는데 방조제가 설치되고 인안들이 생겨난 것은 그다지 먼 옛날의 이야기가 아니다. 일제 때까지만 해도 그 인안들은 순천만의 일부로써 바닷물이 드나들고 갈대가 자라고 게와 철새들이 노닐던 갯벌이었을 뿐이다.

▲ 순천만/김학수 기자
1918년에 조선총독부 육지측량부가 발행한 순천만 지도를 보면 이미 순천만 제방이 표시되어 있고 그 안쪽은 논으로 표시되어 있다. 그러니 최소한 1918년 이전에 이미 순천만 제방은 축조되었다고 볼 수 있다. 마침 그 당시에는 일제가 자국의 공업화 정책으로 인한 식량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우리나라에서 소위 토지조사사업(1910년-1918년)을 펼치며 우리의 토지와 곡식을 마구 약탈하던 시대인지라 일제가 순천만에 제방을 쌓아 농토도 확보하고 식량도 확보하려고 했을 것임은 거의 분명해 보인다.(이렇게 해서 약탈한 토지와 새로 개간한 토지들을 관리하기 위해서 일제가 만든 회사가 유명한 동양척식주식회사였다.) 그리고 순천만 무진교에서 이사천까지 이어지는 약 3km의 긴 제방은 보통 대대둑으로 불리는데, 일제 말기인 1942년부터 1943년 사이에 일본인 ‘중원’이라는 사람이 그 제방 축조를 주도하였다고 하여 그 제방 안쪽의 대대 평야를 지금도 ‘중원들’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처럼 일제 때 현재의 원형을 갖추기 시작한 순천만과 순천만 둑길 그리고 그 안쪽의 인안들이나 중원들은 그 동안 여러 차례에 걸쳐 큰 변화의 위기를 겪었다. 물론 그 대부분은 자연 재해에 의해 둑이 무너지고 평야가 유실되는 사태를 맞아서 벌어진 일이었지만(특히 1962년의 8·28 수해 때) 때로는 인간들의 욕심 때문에 큰 위기를 겪기도 하였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1990년대에 추진된 동천 하도정비사업과 연계된 순천만 골재채취 사업이었다. 하지만 1996년 이후 일부 시민단체가 중심이 되어 골재채취사업 반대 운동을 전개하는 한편 순천만의 가치를 찾고 그 가치를 알리기 위한 여러 가지 활동을 동시에 전개하면서 순천만이 그동안 우리가 모르고 있었던 것보다 훨씬 풍부한 자연생태적 가치와 훨씬 빼어난 자연경관적 가치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 발견되고 부각되면 결국 그 골재채취사업은 취소될 수밖에 없었다. 

오늘날 순천만이 세계적인 습지 보호 구역으로 인정받고, 국가지정문화재 명승 41로 지정되고, 순천시가 ‘생태 수도’임을 내세우며 세계적인 생태도시로 발전하고 있는 것은, 그리고 현재 열리고 있는 순천만 국제 정원 박람회가 순천에서 개최될 수 있었던 원동력도 알고 보면 모두 1990년대에 전개된 순천만 골재채취 사업 저지를 위한 시민단체와 시민들의 반대 운동의 결과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당시에 추진된 순천만 골재채취 사업에 대해서 도리어 감사를 해야 하지 않을까? 참으로 기막힌 반전이며 기막힌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무릇 순천만을 지키기 위한 시민단체와 시민들의 노력은 우리 지역 역사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역사에 기록될 만한 엄청난 결과를 가져왔다. 순천만이 세계적인 습지 보호 지역으로 인정받고 순천만을 찾는 탐방객이 한 해 약 300만 명에 달하는 현재의 상황은 정말 예전에는 상상할 수도 없던 일이었다. 이제 순천만은 순천의 자랑이자 상징이 되었으며 더불어 순천시민 모두는 순천만을 잘 지키고 보호할 역사적, 시대적 사명을 부여받았다.

순천만을 자랑스러워하며 순천 시민임에 자긍심을 가지는 한편 이 모든 역사의 전개 뒤에 이러한 역사를 만들어낸 시민 단체와 시민들의 노력이 있었다는 점을 시민들은 또한 기억해야 한다. 역사는 그냥 흘러가는 것이 결코 아니다. 역사는 만들어 지는 것이다. 역사는 만들어 가는 것이다. 오늘의 순천만의 존재는 우리에게 이 명확한 진리를 새삼 일깨워 주고 있다.

엄주일
순천효천고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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