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녘에서 해뜨고 서녘에서 해진다-

1969년 서독 빌리 브랑트 수상은 냉전의 와중에서도 동방정책을 시행하여 독일 통일의 초석을 닦았다. 덩 샤오핑은 흑묘백묘(黑貓白貓)라는 실용주의 노선을 내세워 중국 사회의 경직성을 탈피하였다. 1991년 노태우 대통령은 북방정책으로 중국과 수교하여 한국경제의 활로를 뚫었다. 얼마 전 영국마저 AIIB(아시아 인플라 투자은행)에 가입하여 세계를 경악케 하였다.

현재의 국제정세는 극심한 대립과 변화가 교차하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미국이 남미에 간섭하는 시기는 끝났다’고 했다. 영국의 선거에서 드러나듯 서구지역은 보수화되는 반면, 중동지역은 안개 자욱한 형세이다. 사우디는 오바마 대통령과 중동 정상들과의 회담인 걸프협력회의(GCC)에 참석하지 않기로 했다. 최근 부쩍 가까워진 이란과 미국의 관계에 대한 불만을 표출한 것이라고 한다. 푸틴-시진핑은 러시아의 전승기념일에 ‘전략적 상호협력’을 더 강화하였다. 양국은 천연가스 공급계약을 체결했으며, 고속철도 사업과 농업생산에도 공동투자하기로 했다. 2014년 인도는 러시아 군사무기 총 47억 달러 규모를 공급받았다. 북한의 무력시위는 갈수록 우리 국방을 흔들어 대고 있다. 북은 9일 동해상으로 함대함 미사일 3발과 전략잠수함의 탄도탄 ‘KN-11’(북한명 북극성)을 발사하였다. SLBM이 실전배치 될 경우 북한 핵·미사일에 대응하는 군 당국의 ‘킬 체인(Kill Chain)’과 한국형 미사일 방어(KAMD) 체계가 사실상 무력화된다.

이러한 때, 격변하는 현실에 상응하는 국정 운영과 외교적 전략이 필요하다. 북의 무력시위에 대해서 일일이 국방력으로 대응하는 것은 ‘밑빠진 독에 물붓기’와 같이 한없는 국력소모만 자초할 뿐이다. 사드를 배치한다 해도 도진개진에 불과하다. 대화로서 풀며 한반도 정세를 평화무드로 조성하는 전략과 지혜가 필요하다. 모든 물상은 변화하고, 이에 따라 세상도 변한다. 변하지 않는 것은 변한다는 사실뿐이다. 국제사회에서 협약은 일정한 조건 속에서 유효한 것이지 영원하지 않다. 나라를 지키는 것이 우리 자신에게 달려있지 우방에게 매어있지 않다. 한미안보조약이 우리를 지켜준다는 보장도 없고, 그렇다고 러시아나 중국이 우리를 지켜준다고 생각하면 지나가는 개도 웃을 것이다.

세계경제의 퇴조 속에서 국익(國益)을 찾아가는 움직임이 두드러진다. 지난 6일 짐 로저스는 ‘북한이 놀랍게 변하고 있다. 전 재산을 투자하고 싶다’고 했고, 정종욱 통일준비위원회 부위원장은 7일 ‘지금까지 충분한 제재가 가해진 만큼 더 이상의 대북 제재는 필요 없다’고 말했다. 국익이 절대선(絶對善)은 아니겠지만, 자본의 흐름과 한반도 주변정세가 그렇게 흘러간다는 뜻일 게다.

근대사회를 규정하는 핵심에는 ‘자본의 작용과 반작용’이 놓여 있다. 자본의 속성이 극단으로 치달음에 따라 이미 여기저기서 파열음이 나고 있다. 세계의 진영논리가 한국에서는 반공과 지역 그리고 성장논리(이데올로기)로 탈바꿈되어 우리사회의 틀을 고정화하여 버렸다. 이 구조로는 사회의 잠재력을 끌어내고 유동성을 확보하기 어렵다. 우리도 활로를 뚫어야한다. 연금을 까고 복지를 축소시켜서라도 미래자원을 지켜낼까 하는 방어적 자세가 우리사회의 논의의 초점이어서는 안 된다. 현 상황을 고정시켜 놓고 여기에 미래의 틀을 짜깁기해서는 국가 동력이 살아나지 않는다. 어떻게 해서 평화를 일궈내 북방에 진출하여 국가를 부강하게 할까 하는 진취적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국민이 곧 국가이다. 현재가 미래를 규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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