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도형 변호사
2003년 11월 세상을 떠난 한국사회개발연구원 원장을 지낸 김운초 씨가 ‘부동산과 금전신탁, 그리고 예금 전부를 연세대에 기증한다’는 내용의 유언장을 남겼다. 고인은 배우자와 자녀가 없는 상태로 세상을 떠났다. 유산은 은행 두 곳에 있는 돈 103억 원과 미화 166만 달러(약 20억 원), 그리고 부동산 등을 포함해 500억 원 상당이었다. 하지만 고인의 형제와 조카들이 고인의 예금이 있는 은행 2곳을 상대로 예금 지급을 요청했다. 은행은 고인의 유언장을 근거로 예금 지급을 거절했다. 그런데 문제는 고인의 유언장에 도장이나 서명이 없었다. 고인의 유가족은 “유언장에 고인의 날인이 없어 효력이 없고, 자신들에게 상속 권한이 있다”며 예금 반환 소송을 제기했다. 이 같은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연세대 또한 “고인의 유산을 학교에 기증했으므로 권한이 우리에게 있다”며 독립당사자신청을 했다. 이 소송은 약 3년 동안 진행되었다. 결론은 “유언자의 날인이 없는 유언장은 자필증서(自筆證書)에 의한 유언으로서의 효력이 없다”는 이유로 유가족이 재판에서 승소했다.

고인이 유언장을 작성할 때 법률전문가와 상의했더라면 소송까지 가지 않았을 것이다. 500억 원 상당의 재산을 기증하는 유언장을 남기면서 법률전문가와 충분한 법적 검토를 하지 않은 것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유언장을 제대로 작성하지 않는 바람에 예금 반환 소송에 엄청난 금액의 소송 비용(인지대, 송달료, 변호사 비용 등)을 지출하고, 소송 당사자들도 이루 말할 수 없는 정신적 고통을 겪었다.

이 소송은 민법에서 정하고 있는 다섯 가지 유언의 방식 중 자필증서에 의한 유언의 효력을 다투는 것이었다. 민법은 제1066조 제1항을 통해 ‘자필증서에 의한 유언은 유언자가 그 전문과 연월일, 주소, 성명을 자서하고 날인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유언과 관련된 소송은 대부분 자필증서에 의한 유언과 관련하여 제기되고 있고, 유언장이 무효라는 판결도 많이 나온다.

민법은 자필증서(自筆證書)에 의한 유언(직접 손으로 쓰기), 녹음(錄音)에 의한 유언(녹음하기), 공정증서(公正證書)에 의한 유언(공증인 앞에서 유언하기), 비밀증서(秘密證書)에 의한 유언(비밀로 작성하기), 구수증서(口授證書)에 의한 유언(다른 사람에게 유언을 얘기해 대신 받아 적게 하기)을 규정하고 있다. 그리고 대법원은 “민법 제1065조와 제1070조가 유언의 방식을 엄격하게 규정한 것은 유언자의 진의를 명확히 하고, 그로 인한 법적 분쟁과 혼란을 예방하기 위한 것이므로 법정 요건과 방식에 어긋난 유언은 그것이 유언자의 진정한 의사에 합치하더라도 무효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고 판시하여 매우 엄격하게 적용하고 있다. 필자는 유언과 관련된 상담을 할 때 공정증서에 의한 유언을 권하면서 공증업무를 담당하는 곳을 알려준다.

민법에서 정하고 있는 유언의 요건과 방식을 갖추더라도 유언자의 의사대로 모든 재산이 기부되지 않는다는 사실도 알아두어야 한다. 우리 민법은 상속이 개시되면 일정한 범위의 상속인이 피상속인 재산의 일정한 비율을 확보할 수 있는 유류분(遺留分)이라는 제도를 두고 있다. 피상속인의 직계비속 및 배우자는 법정상속분의 2분의 1, 피상속인의 직계존속 및 형제자매는 그 법정상속분의 3분의 1의 유류분을 인정한다. 유언은 건강할 때 미리 하는 것이 좋고, 가능하면 상속인들의 동의를 얻을 필요가 있다. 그리고 법정상속권자의 유류분을 감안하여 유언을 하고, 공정증서(公正證書)에 의한 유언을 한다면 유언과 관련된 법적 분쟁을 미리 막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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